위치가 참 좋았다. 아파트 뒤쪽이어서 거리도 가깝고, 식탁에 앉으면 창으로 텃밭에서 일하는 밀짚모자 쓴 아마추어 농부들도 보였다. 레스토랑은 요일을 정해 낮에는 두 명이 교대로, 밤에는 전문 요리사가 예약제로 운영할 거라 했다. 아직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실내는 썰렁하고 어수선했지만, 그만큼 분위기는 더 자유로워 보였다.
남편이은퇴할 때 이런 공간 하나 있음 얼마나 좋을까? 교대로 드나드는 사설 도서관, 색소폰도, 하모니카도 불고 아무나 길 가다 들어와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 '문화 아카데미'라 이름 붙여볼까? 노후엔 그런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혼자이며 함께인 삶. 커피 머신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는 잠시 공상에 빠졌다.
밥을 먹으며 지인에게 나는 이런 꿈 이야기를 했다.
“너무 좋죠. 그래서 저도 여기에 피아노도 갖다 두려고요.”
피아노? 저녁 시간 담당하는 요리사가 수족관도 둘 거라면서….
이건 입 밖으로 내놓지 않은 중얼거림이다.
쉽지 않을 텐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같은 공간을 시간으로 분할해 사용한다는 게. 나는 슬며시 지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공유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오래전 친구가 세든 아파트다.
대학을 졸업한 친구는 직장을 구해 서울로 올라갔다. 그녀는 회사 근처에 신혼부부가 사는 아파트의 방 하나를 월세로 얻었다. 친구를 만나러 간 나는 밤늦게 누군가 불쑥 들어설 것 같은친구의 방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부엌도 주인과 같이 쓴다니.
"어떻게?" "시간을 조절해서 간단히 해 먹기도 하고, 사 먹기도 하고."
먼 후일친구는, 그날 내려간다고 길을 나서던 내가 되돌아와 가게에서 산 스팸과 통조림을 건네줘서 밤에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잊어버린 기억이지만, 아마 나는 친구가 그 부엌에서 주인 눈치 보며 음식을 해 먹는 걸 무척 안쓰럽게느꼈던 것 같다.
봄마다 우리 집 레인지 후드를 찾아오는 새를 올해는 쫓아내지 못했다. 마음이 약해진 탓일 게다. 저러다 말겠지, 싶은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이번 새는 남달랐다. 2주 전쯤 새끼를 부화한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부엌 식탁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느긋하게 신문을 보려다 결국 포기하고 내 방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새소리가 온 집에 울린다. 나는 후드 아래 놓인 냄비를 옆으로 옮긴다. 자꾸 뭔가 흘러내릴 것 같아서. 약간 두렵기도 하다. 후드 철망을 열면 새 둥지가 쏟아져 내리는 건 아닐까?
며칠 전에는 참다못해 후드에 불을 켜고 한 시간쯤 틀어 놓았다. 그러다 지고 말았다, 새에게.
녀석이 뒷 베란다 쪽에서 목청껏 비명 비슷한 소리를 지르며 울고 다니는 게 아닌가. 새도 기분 따라 다르게 운다는 걸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새소리를 싫어할 줄은 나도 몰랐다. 산책하다 만나는 새소리는 얼마나 정겨운데. 어떤 때는 걸음을 멈추고 들리는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옮겨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가만히 들으면 같은 소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