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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n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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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이웃


“언니, 저희 가게에 점심 드시러 오세요.”

일요일 오전 받은 카톡 문자.

그리고 아래에 가게 사진이 떴다.


지인이 레스토랑을 열었다며 보낸 초대 문자다.


좀 전에 늦은 아침 식사를 한 터라 나는 다음 날 들러 볼까 생각한다.


“내일은 다른 분이 하시고, 저는 목요일만 가능해요.”

세 명이 함께 운영하는 공유 주방이란다.


늦은 점심을 먹기로 약속하고 들른 가게는 바로 옆에 주말 농장이 있는 건물이었다.


위치가 참 좋았다. 아파트 뒤쪽이어서 거리도 가깝고, 식탁에 앉으면 창으로 텃밭에서 일하는 밀짚모자 쓴 아마추어 농부들도 보였다. 레스토랑은 요일을 정해 낮에는 두 명이 교대로, 밤에는 전문 요리사가 예약제로 운영할 거라 했다. 아직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실내는 썰렁하고 어수선했지만, 그만큼 분위기는 더 자유로워 보였다.


남편이 은퇴할 때 이런 공간 하나 있음 얼마나 좋을까? 교대로 드나드는 사설 도서관, 색소폰도, 하모니카도 불고 아무나 길 가다 들어와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 '문화 아카데미'라 이름 붙여볼까? 노후엔 그런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혼자이며 함께인 삶. 커피 머신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는 잠시 공상에 빠졌다.


밥을 먹으며 지인에게 나는 이런 꿈 이야기를 했다.




“너무 좋죠. 그래서 저도 여기에 피아노도 갖다 두려고요.”


피아노? 저녁 시간 담당하는 요리사가 수족관도 둘 거라면서….

이건 입 밖으로 내놓지 않은 중얼거림이다.


쉽지 않을 텐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같은 공간을 시간으로 분할해 사용한다는 게. 나는 슬며시 지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공유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오래전 친구가 세든 아파트다.  

대학을 졸업한 친구는 직장을 구해 서울로 올라갔다. 그녀는 회사 근처에 신혼부부가 사는 아파트의 방 하나를 월세로 얻었다. 친구를 만나러 간 나는 밤늦게 누군가 불쑥 들어설 것 같은 친구의  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부엌도 주인과 같이 쓴다니.

"어떻게?"
"시간을 조절해서 간단히 해 먹기도 하고, 사 먹기도 하고."

먼 후일 친구는, 그날 내려간다고 길을 나서던 내가 되돌아와 가게에서 산 스팸과 통조림을 건네줘서 밤에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잊어버린 기억이지만, 아마 나는 친구가 그 부엌에서 주인 눈치 보며  음식을 해 먹는 걸 무척 안쓰럽게 느꼈던 것 같다.




봄마다 우리 집 레인지 후드를 찾아오는 새를 올해는 쫓아내지 못했다. 마음이 약해진 탓일 게다. 저러다 말겠지, 싶은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이번 새는 남달랐다. 2주 전쯤 새끼를 부화한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부엌 식탁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느긋하게 신문을 보려다 결국 포기하고 내 방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새소리가 온 집에 울린다. 나는 후드 아래 놓인 냄비를 옆으로 옮긴다. 자꾸 뭔가 흘러내릴 것 같아서. 약간 두렵기도 하다. 후드 철망을 열면 새 둥지가 쏟아져 내리는 건 아닐까?


며칠 전에는 참다못해 후드에 불을 켜고 한 시간쯤 틀어 놓았다. 그러다 지고 말았다, 새에게.

녀석이 뒷 베란다 쪽에서 목청껏 비명 비슷한 소리를 지르며 울고 다니는 게 아닌가. 새도 기분 따라 다르게 운다는 걸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새소리를 싫어할 줄은 나도 몰랐다. 산책하다 만나는 새소리는 얼마나 정겨운데. 어떤 때는 걸음을 멈추고 들리는 소리를 인간언어로 옮겨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가만히 들으면 같은 소리가 없다.



끼룩. 스르르. 삐잇. 트르르(이건 철망을 건드리는 떨림 같다). 후꾹후꾹. 찌르르 찌르르(이건 새소린지 벌레 소리인지). 짹짹. 찌릉. 쭈핏쭈핏. 피리리 피리리(표현하기 힘든 높낮이가 있다, 마치 음악처럼). 삐요삐요. 끼끼끼.




하지만 지금 내 귀에 들리는 새소리는 단순하다. “시끌 시끌, 짹짹!”

마음 상태에 따라 같은 소리도 다르게 들린다. 나의 고요를, 나의 휴식을 녀석들이 빼앗아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난, 녀석들에게 거실을 빼앗기고 대부분 방에서 지낸다.


공유한다는 건 불편을 감수하는 거다.


아기 새는 언제 날 수 있을까? 날게 되면 둥지를 떠난다니, 기다릴 밖에. 여름내 이렇게 사는 건 아닐까? 내년엔 절대 허락하지 말아야지. 안 되는 건 애당초 거절해야 하는 거야. 어영부영하다가 이 꼴 되고 말았지.


그나마 밤이 되면 새들이 잠자리에 드니 견딜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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