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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May 26. 2016

전철에서

거기에 매너 따윈없다

맞은편에 아가씨 하나가 새초롬하게 앉아있다. 늘씬하다. 귀에는 이어폰도 꼽았다. 얌전히 앉아있던 그녀가 갑자기 전화기를 쳐다보며 막웃는다. 뭐라뭐라 말도 한다.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했다가 이내 그게 영상통화임을 깨달았다. 깔깔대며 몸을 비비꼰다. 애인인가. 신나게 통화를 하고나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 새초롬해진다. 그러더니 립스틱을 꺼내 입술을 칠한다. 거울을 보며 뺨도 두드린다.


경로석에 앉은 어르신들이 음악을 틀어놓고 대화를 한다. 서로 귀들이 어두우니 소리까지 지르며. 맞은편 경로석에 앉은 어르신들까지 가세해서 아주 세미나가 열렸다. 옆자리가 비자 냉큼 아가씨 하나가 와서 앉는다. 나는 불안했다. 결국 그녀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한참 떠들고나서는 만나서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더니 또 누군가에게 문자를 열심히 보낸다.


음악이 바뀌고 어르신들의 세미나는 격렬해진다. 조국의 근대사와 민초들의 힘겨웠던 삶으로 주제가 바뀌었다. 나는 점점 울고 싶어진다. 전철을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럴 수도 없다. 맞은편 화장녀는 계속 뺨을 두드린다. 내가 두들겨 주고 싶다.


이제 내 양쪽에서 스테레오로 통화들을 한다. 남녀, 어른, 아이, 구분이 없다. 당신은 무슨 권리로 내 귀에 당신의 사생활을 주입하는지 묻고싶다. 멀리 어르신들께도 묻고 싶다. 무슨 권리로 내가 원하지않는 음악을 나에게 들려주는지.


이 글을 읽는 세상사람들아, 집에 불이났거나 사람이 쓰러진 일이 아니면 부디 내려서 통화하길 빈다. 내가 당신에게 내 사적 일들을 말하고 싶지않듯이 당신의 사적 일들을 나도 듣고 싶지않다. 공공장소에서의 매너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듣고 싶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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