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 그런 책들
언젠가부터 '힐링'이라는 말이 광풍처럼 불면서 '괜찮아 어쩌고 저쩌고' 하는 책들이 인기를 누린다. 그런 책들의 요지는 이렇다, '스스로를 자책하지마라, 스스로를 믿고 자중해라, 조급하게 생각하지마라. 못난 인간이어도 괜찮다, 그리고 실상 너는 못난 인간도 아니다'
뻔한 얘기들인 줄 알면서도 그런 책들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말을 나같은 사람이 하면 시시한데 스님들이나 세상의 구루들이 하면 그럴듯해서일까.
내가 알기로 '힐링'이라는 개념은 기독교 문화에서 유래되었다. 그것은 애초에 '상처난/받은 영혼을 치유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지극히 기독교적인 컨셉이다. 그 개념 자체 문제될 것은 없다. 종교는 응당 그래야 하므로. 근데 그 개념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속으로 흘러들어와도 괜찮은 것인가.
왜 인간의 영혼은 상처를 받는가. 근본적인 원인은 신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왜 신과의 관계가 잘못되나. 개인의 죄책 때문이다. 자신의 죄 때문에 신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그래서 그 영혼이 상처를 받는다, 이게 기본 컨셉이다.(그렇게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개인의 죄책에 대한 고백이 우선적 과제이다. 통렬한 자기 반성이나 회개, 그를 통한 신의 용서, 이 프로세서에 의해서만이 상처난 영혼은 치유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힐링이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끝까지 종교적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핵심은 자기반성/회개이다. (그래서 누군가 여행을 다녀와서 '아, 모처럼 힐링하고 왔어요~' 하는 소리를 하면 난 속으로 '오, 회개하고 신이라도 만났다는 말인가'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컨셉이 세속으로 건너오면서 빠져버린게 자기반성이다. 자기의 책임을 하나도 묻지않고 '괜찮아' 그래주니 얼마나 달콤한가. 누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에게 그냥 무조건 '괜찮아' 하며 등을 두드려준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통렬한 자기반성이 우선해야할 상황에서 '(자기 반성 같은건 생각 안해도) 괜찮아'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까.
'죽도록 알바도 했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할 수 있는건 다 했다. 근데 이건 뭐냐, 왜 이렇게 밖에 안되냐' 그래서 결국 '이건 내 책임이 아니다...' 한다면 헬조선에서는 맞는 말이다. 근데 웃긴건 그런 친구들에게 '그건 네 책임이 아니야, 넌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해보았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도 알아. 그걸 힐링이라고 하는 소리냐. 이렇게 밖에는 답이 안나온다. 자기 잘못이 아니란 것을 안다고 해서 문제가 크게 나아지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 있어서 개인과 사회의 책임을 무자르듯 선명하게 나누기는 쉽지 않다. 그 각각의 정도를 가늠하는 것도 쉽지 않고 대충 뒤섞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요컨데, 개인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만 인식할 때 타인/사회에 대한 피해의식과 냉소주의, 혁명에 대한 환타지가 싹틀 것이고 사회의 문제를 자신/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때 신경쇠약과 무력감, 그에 따른 감상적 위로만 횡횡할 것이다.
모모 스님이나 구루의 책들이 이런 양상을 구분해서 다룬다거나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리고 스님인데 왜 힌두교스럽게 이야기들을 하는지도 이해가 안된다. 물론 스님은 스님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을 하겠으나 바로 그것 때문에 공허하게 들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붐비는 지하철을 참선도량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아, 쫌~~~)
정치가 바뀌고 사회체제가 바뀌어야한다. 하지만 개인의 통렬한 자기반성과 책임 또한 여전히 닥친 과제이다. 생각해보면 이렇게든 저렇게든 사회는 늘 바뀌고 있는데 나 자신은 여전히 안 바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개인의 자기개발이라는 것이 실상은 사회진입과 성공을 위한 포트폴리오 관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기를 상품화하는 노력밖에 되지않는다는 사실은 또 다른 이야기지만)
혁명이 나를 바꾸는 속도보다 내 생각이 나를 바꾸는 속도가 더 빠르다. 하지만 혁명은 여러 사람을 바꾸고 내 생각은 나 밖에 못 바꾼다. 하지만 혁명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내 생각의 변화는 지금이라도 가능하다. 하지만..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위해선 또 휴(休)센터에 등록하라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