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 아이도 당연하게 책 읽는 것을 좋아할 줄 알았다. 아이를 낳을 무렵 네 살이었던 나의 첫 조카도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그 쯤의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책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친정언니가 조카의 책을 잔뜩 물려줬다. 아직 기어 다니는 아이의 집에 아이 책으로 가득했다. 앉아 있다 보면 언젠가 읽겠지, 싶었는데 웬걸, 앉아도 걸어도 뛰어도 아이는 책에 큰 관심이 없었다. 무릎에 앉혀 읽어줘도 금방 내 품을 빠져나갔고 책을 꺼낸다 싶으면 책으로 기찻길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아이는 18개월과 함께 코로나시기를 맞이했다. 코로나 초기 때는 우리같이 돌봄의 대안이 없는 맞벌이 부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 넣고 출근을 해야 했다. 원에 몇 명 등원하지 않다 보니 연령과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이 함께 했는데, 그중에 책을 참 좋아하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선생님이 찍어서 보내주시는 사진을 보면 아이는 책을 보는 누나 옆에 앉아 그 책을 함께 보고 있었다.
그때부터 아이의 책 사랑은 시작되었다. 책으로 기찻길을 만드는 건 여전하지만, 전에 없던 행동이 집에서 나타났다. 바로 책을 꺼내와 읽어달라는 것!
엄마에게 가져오면? 읽어주면 된다. 그런데 아빠에게 가져가면? 우리 집 아빠는 다른 집 아빠처럼 눈으로 책을 읽어줄 수가 없기에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당시의 아빠는 육아순발력이 제로라 책을 읽을 수 없으면 지어서라도 말하면 되는데 그것조차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처음엔 시각장애인 아빠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한 방법으로 책에 점자스티커를 붙였다. 내가 남편에게 책 내용을 불러주면 남편은 열심히 점자를 찍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1. 책의 글밥이 점점 많아진다.
2. 물려받은 책은 많은데 일일이 점자를 찍을 수가 없다.
3. 열심히 붙여두었으나 아들은 그만큼 책에 관심이 없다.....
둘이 마주 앉아 점자 찍고 있을 시간을 내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아들이 책에 관심이 없다 보니 나와 남편의 의욕도 떨어졌다.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도서대여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아이의 책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고 집에 책이 많았으며 점자가 아닌 글로 읽을 수 있는 대안(=애석하게도 나)이 있었기에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가 책에 관심을 갖는 시기가 되고 나선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마다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매번 내가 다 읽자니 남편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있는 것도 싫었고, 남편은 아이가 자신에게 책을 가져왔을 때 대부분의 책에 붙여둔 점자가 없다 보니 읽어주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의 요구에 남편이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설리번 플러스'라는 앱을 실행했다. '설리번 플러스'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시각보조 음성안내 앱이다.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성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아주 유용하다. 책을 찍으면 그 페이지에 있는 글자를 음성으로 변환하여 읽어준다. 사진이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도 대략적으로 말해준다.
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땐 책만 가져와서 내밀지만, 아빠에게 부탁할 때는 휴대폰도 함께 가져와서 손에 쥐어준다.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땐 휴대폰이 필요하다는 것을 3살 무렵부터 알아서 내 휴대폰이 아닌 남편 휴대폰을 가져온다. 남편은 휴대폰으로 아이의 책을 찍어 휴대폰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은 후 아빠의 목소리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여섯 살이 된 지금은 한글을 어느 정도 알기에 아이가 남편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빠의 휴대폰이 도와주는 책 읽기는 진행 중이다.
물론, 이런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도 많은 시각장애인 엄마, 아빠들은 어떤 노력들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이제 시각장애인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세상을 읽어줄 수 있는 더 많은 기술들이 개발되길 바란다. 나 또한 그것의 수혜자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