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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y 05. 2023

아이는 아빠의 장애를 알까?

알아도 걱정 몰라도 걱정

아이를 키우는 장애인이라면 '아이에게 나의 장애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도 고민일 것이다. 이에 대해 부모가 된 시각장애인들과 몇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아이에게 굳이 부모의 장애를 말하지 않고 살다 보니 '우리 아빠는 잘 안 보이는구나'를 알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아이에게 "아빠는 잘 안 보여"를 알려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두의 의견이 다 달랐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신 나의 대모님은 자녀들에게 한 번도 아빠가 시각장애인임을 말해주지 않았지만 아이가 자연히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임신 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인데, 막상 나의 상황이 되고 보니 굉장히 고민이 되었다. 나는 아이에게 아빠의 장애를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더 낫다는 편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사실 내가 성격이 참 급해서 아이가 스스로 아빠의 장애를 알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던 것이 더 컸던 것 같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는 아빠가 시각장애인임을 안다. 여섯 살이 되고 책에서 읽거나 TV에서 본 걸 잘 기억하고, 유치원에서 다양한 것을 배우면서 아빠의 장애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아졌다.

예전에 아이에게 "아빠에게 물건을 줄 때는 손 위에 올려줘야 찾을 수 있어."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러면 아이는 아빠의 손 위에 장난감을 올려주었다.  또, 아빠는 엄마와 다르게 책을 읽어 줄 때 휴대폰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빠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할 때에는 휴대폰도 함께 가져다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왜 아빠는 손 위에 올려줘야 해?"

"아빠는 잘 안 보여서 아무 데나 놓으면 찾기가 힘들거든."

"아빠는 왜 잘 안 보여?"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눈이 많이 아파서 그것 때문에 지금은 잘 안 보여."


요즘 아이는 아빠, 동생과 함께 보물찾기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술래가 안방 어딘가에 장난감을 숨겨놓고 나머지 사람들이 찾는 것인데, 아이가 숨길 때 동생이 베란다 창문 쪽에서 어디 숨기는지 몰래 보고 있을 때가 있다. 동생에겐 몰래 보지 마! 반칙이야!라고 하면서 동생 옆에 서있는 아빠에겐 "아빤 잘 안 보이니까 괜찮아요."란다.  그 말에 남편 혹여나 상처를 받을까 남편의 눈치를 살피고 아이에게 말한다. "아빠가 잘 못 보는 게 맞지만, 아빠도 조금 볼 수 있어."


아이가 아빠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다 "이거 좀 보세요."라고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가도 아이는 아빠의 손을 잡아 설명하려던 물건에 손을 대어 주거나 손 위에 올려준다. 밖에 나가서는 아빠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간다. 언젠가부터 둘째 아이도 오빠가 하는 것처럼 아빠 손 위에 장난감을 올려주고 아빠 손을 잡고 이끈다. 둘째에겐 설명한 적도, 시범을 보인 적도 없는데 오빠의 행동을 유심히 봤는지... 역시 둘째는 그냥 쑥쑥 크구나.


어느 날, 아이와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이런 책을 발견했다.

(일부러 찾은 것도 아닌데 난 이런 책들을 참 잘 찾아낸다. ㅎㅎㅎ)

시각장애인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의 관점에서 쓴 책이다.



우리 아빠는 놀이동산에 갈 때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아요.

하지만 꼬마 자동차는 언제나 아빠가 운전하지요.
우리 아빠는 예쁜 꽃밭에서도 내 사진을 찍어 주지 않아요.

대신 나를 불러 장미꽃 향기를 맡게 하지요.

우리 아빠는 좋은 향기를 정말 잘 찾아낸답니다.
우리 아빠가 가장 잘하는 것은 숨바꼭질이에요
내가 아무리 꼭꼭 숨어도 소용없어요.

우리 아빠는 내가 어디에 숨었는지 금방 알아내거든요
"아빠,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내가 여기에 있는지 알아내요?"
"응,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귀로 움직이는 소리를 고, 코로 냄새를 맡고,

또 손으로 만져 보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단다."
"아빠, 졸려요. 그림책 읽어 주세요.
불을 끄면 방 안은 온통 캄캄해져요.
하지만 캄캄해도 괜찮아요
손가락으로 그림책을 읽어 주는 우리 아빠
우리 아빠는 정말 멋져요!
<캄캄해도 괜찮아!>중에서



난 이 책을 읽으며 아빠도 아이도 아닌 아이와 아빠가 함께 하는 모든 상황에 조그맣게 그려진 엄마에게 눈이 갔다. 인자한 표정으로 둘을 지켜보는 그녀.... 나에겐 왜 그런 표정이 없는지 ㅎㅎㅎ


작가는 책 속의 아이였을까 아빠였을까, 아님 엄마였을까?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에 대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점자가 붙어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책표지의 점자도 거의 그림에 가까울 뿐, 손으로 읽기는 어려웠다.



아이는 아빠의 장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아빠가 시각장애인이라 아이의 마음이 아픈 날도 오게 ? 걱정부자인 나는 괜히 하지 않아도 될 생각까지 해본다. 하지만 아이가 그것으로 마음 아픈 일이 생긴 다하더라도 현명하게 넘길 수 있도록 단단하게 키우는 것이 나와 남편의 임무이지 않을까.


남편과 함께 하며 아쉬운 점 하나는,  내가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성격이 급해서 말하다 보면 말이 꼬이기도 하고, 묘사도 잘 못하며 표현도 참 단조롭다. 더 잘 설명해 주지 모하는 것이 스스로가 답답하기도 하고 남편에게 미안할 때도 종종 있다. 태어나자마자 시각장애인 아빠를 만나게 된 나의 아이들은 표현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손 잡고 함께 걸어가며 아빠에게 함께 가고 있는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설명해 주는 사람 말이다. 그것이 걸어가는 순간의 남편을 위함이 아니라 아빠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의 인생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장애인'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이 많아지면서 아이가 장애인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설명을 해주니 "그럼 아빠는 시각장애인이야?"라고 물었다.

"응. 아빠는 시각장애인이야." 이렇게 '아빠가 잘 보지 못하는 것'이 '시각장애인'으로 정의 내려졌다.


며칠 전 성당에 가다가 목발을 짚고 다리를 절며 걸어가시는 어르신을 본 적이 있다.

 "엄마 왜 저 할아버지는 다리 한쪽이 없어? 이상하게 걸어가."

"다리 하나가 없을 수도 있어. 하나가 없다고 이상한 게 아니야."

"근데 사람은 다리가 두 개잖아?"

"그렇지, 근데 한 개인 사람도, 둘 다 없는 사람도 있어. 그러면 목발을 사용하기도 하고 딩동댕유치원 하늘이처럼 휠체어를 타기도 해."

"응."

"아빠도 한쪽 눈이 안 보이지만 아빠가 이상한 게 아니지?"

"아 맞다 그랬지!"


아빠가 장애인이어서 설명하기 쉬운 것들이 많아졌다. 아빠가 장애인이지만 아이에겐 그냥 아빠이다.


이전 12화 아이와 안과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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