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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y 15. 2023

내가 항상 그의 왼쪽에 서는 이유

남편의 의안

남편의 오른쪽 눈은 의안이다. 의안이란 인공 눈알로, 플라스틱이나 도자기로 만들어진 가짜 눈이다.

하지만 그런 가짜 눈도 남편의 오른쪽 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의 진짜 눈이 된다. 남편은 의안을 빼면 눈꺼풀이 내려와 오른쪽 눈을 거의 가린다. 살짝 보이는 눈은 좀비영화에 나올 것 같이 눈동자가 하얗게 변해있다. 어릴 적부터 이런 눈을 가지고 살아온 그에게 오른쪽 눈은 콤플렉스였다. 사람들 앞에서 눈이 보이는 것이 싫었단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그는 드디어(?) 장애등록을 하고 장애인이 되었다. 그를 무척이나 아꼈던 그의 외할머니는 그의 손을 잡고 의안을 만들러 가셨다. 그렇게 그는 오른쪽 눈에 의안을 끼우고 비로소 자신 있게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나도 처음엔 그 눈이 진짜인 줄 알고 습관적으로 오른쪽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했다. 그러다 그와 가까워진 후 그의 오른쪽 눈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 나는 항상 그의 왼쪽에 선다. 그래야 그가 '진짜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으니. 물론,  가짜 눈도 눈이다. 그를 눈뜨게 해 주었으니. 하지만 가짜는 가짜다. 그 눈은 항상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그 눈에 담아주지 못한다.


남편은 하루종일 의안을 끼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의안을 빼고 있다. 화장실 세면대에 의안을 보관하는 작은 통이 있는데 가끔 그 통에 의안을 넣는 것을 까먹을 때가 있다. 그러다 내가 화장실에서 눈 하나를 발견하는 날이면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른다. 너무 무서워.

의안을 뺀 모습을 본 것은 그의 부모, 형제 그리고 나와 아이들 정도일 것이다. 마치 내가 다리털을 정리하지 않으면 치마나 반바지를 입지 못하는 것처럼 남편도 그랬다. 나도 그가 의안을 뺀 모습을 본 것은 연애를 시작하고 1년이 넘어서였다. 그는 절대 내 앞에서 의안을 빼지 않았다. 벌거벗은 기분이라고 했다. 사실 내 입장에선 그가 의안을 빼든 안 빼든 어차피 안 보이는 눈이라 생각되어 큰 의미가 없었는데 그렇게 대수롭게 말하기 어려울 만큼 그에겐 중요한 것이었다.


첫 아이를 낳기 전에 남편은 새로운 의안을 제작했다. 오래 끼기도 한데다 의안을 한쪽만 만들 경우 반대쪽 눈동자의 모양과 비슷하게 만드는데 그 사이 눈동자도 변하기도 했고, 이전보다 만드는 기술도 나아졌기에 새롭게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새로운 눈을 끼우고 살던 어느 날, 함께 친정에 갔다가 그 눈을 잃어버렸다.  집 밖에선 절대 의안을 빼지 않는 그이지만, 씻을 때는 잠시 빼서 눈을 쉬게 하고 의안도 잘 닦아둔다. 그런데 그날, 하필 욕조 배구수망이 살짝 깨져있었는데 잠시 빼둔 의안이 샤워 도중 물에 흘러가버린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세면대에 올려둔 의안을 찾을 수 없자 그는 나를 불렀다. 좁은 화장실을 샅샅이 뒤졌지만 의안은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보이는 깨진 배수구망... "오빠... 눈이 없어진 것 같아."

그렇게 새 눈은 1년 만에 남편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보러 멀리 떠났다. 남편은 의안 없이 친정부모님을 마주하는 것에 굉장히 민망해했지만, 엄마아빠는 크게 신경 쓰시지 않았다.


문제는 친정에 내려간 이유가 아이가 돌 무렵이라 친정식구들과 식사를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자주 만나지 않던 할머니와 고모, 나의 사촌까지 만나는 자리가 있었던 지라 의안 없이 그 자리에 가는 것이 그에게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급한 대로 약국에서 안대를 사서 썼다. 다행히 나의 가족은 그가 안대를 쓴 상황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건 그들의 관심이 어린 아가에게 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위에서 말했듯 어차피 그는 안 보이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식사자리가 끝나고 다시 나와 엄마, 아빠만 있는 자리에서 그는 다시 안대를 벗었다. 때는 7월, 푹푹 찌는 듯한 날씨가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민망함보다 더위와 답답함이 그를 더 힘들게 했나 보다. 다행히 이전까지 쓰던 의안을 처리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기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난 주말, 아이들과 집 앞 키즈카페에 갔다. 남편과 첫째는 먼저 가있고 10분 후 나와 둘째가 키즈카페에 도착했다. 남편은 출입문 바로 앞의 테이블에 앉아있었고 그의 오른쪽 얼굴이 보였다. 그런데 그 얼굴이 뭔가 어색해 보였다. 뭐지? 왜지? 아차...! 남편에게 달려가 말했다. "오빠, 의안 안 하고 왔어."  그는 그렇게 다시 집으로 향했다. 육아는 20년을 한 몸처럼 소중히 여긴 의안조차 빼먹을 만큼 정신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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