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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un 16. 2023

전국의 루시아들 모여라!

저는 전.루.모 회장입니다.

루시아는 내 세례명이다. 앞선 글에서 썼듯 성녀 루시아는 빛을 의미하는 룩스(Lux)라는 라틴어 단어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진다. 그녀는 이름 그대로 어둠을 밝히고 빛을 내는 '빛의 전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종종 램프나 초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시력이 약하거나 시력을 이들과 눈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특별한 공경을 받고 있다. 나는 시각장애인인 전 남친(현 남편)과 함께 하는 이 마음을 그녀의 이름으로 대신하고자 세례명으로 선택했는데 요즘 들어 과연 내가 이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꽤나 자주 한다. (=남편과 자꾸 삐걱거린다.)





몇 주 전 속초로 여행을 갔다. 그곳에 남편의 친구가 있어 여행 중에 그 가족과 함께 만났다. 남편의 친구도 시각장애인이다. 우리가 연애할 때부터 뵀던 분인데 이젠 그의 가족도 넷, 우리 가족도 넷이 되었다. 낮에 만나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간단히 산책을 하다 헤어졌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 우리를 초대하여 감사하게도 점심에 이어 저녁까지 대접해 주셨다. 아이 넷은 금방 어울려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고 그제야 두 부부는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6살-3살 남매를, 그들은 8살-5살 남매를 키우고 있고, 넷 다 직업 또한 같았으며 장애인-비장애인 커플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참으로 많았기에 대화를 더 잘 이어나갈 수 있었다.




남편 친구의 60%는 시각장애인 남성이다. 그렇다 보니 남편을 만나며 참 많은 시각장애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자리엔 그들의 짝도 종종 함께 했다. 나는 평범하다 느껴질 정도로 저마다의 사연과 고민과 결심이 있었다. 어느 날은 가까이 지내는 커플 중 여자분이 내 남편을 보고 말했다. "우리 00이가 오빠(내 남편) 정도만이라도 봤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남편은 전맹이다. 그러니 조금 보는 내 남편이 부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웃픈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고충에 끄덕이다가도 장애와는 전혀 상관없는 보통의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진다.




다음 날 속초에서 집으로 향하는 차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힘들다고 징징대며 사는 건 아닐까? 다들 남편이 장애가 있는 것은 인정하고 이해하며 감내하고 살고 있는데(그것을 받아들이고 결혼했기에) 나는 왜 이런 걸까, 왜 모든 것에 불만일까...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다시 답답해지고 화나고 우울해졌다가 괜찮아지고 그렇게 돌고 도는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다 얘기하고 싶어도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다 전국에 퍼져있는 '루시아'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미쳤고, 아! 다음에 쓸 글의 제목은 <전국의 루시아들 모여라!>로 정했다. 내가 아는 루시아들만 해도 몇 있으니 일단 그들만 모여도 몇 시간 수다는 떨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단지 그들의 행동반경 내에 장애인이 없으니 그럴 테지. 나는 장애인과 살고 있고 직장에 가서 만나는 나의 고객님들(=학생들) 또한 장애인이라 24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런데 장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더 찾기 힘든 경우가 바로 '장애인과 결혼한 사람'이다. 사실 '알고 보니' 장애인과 결혼했더라.. 하는 경우가 더 많을 터. 그런 '알고 보니' 루시아'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 힘듦과 지침이 육아와 겹쳐서 그런 것인지, 내가 문제인건지, 장애를 떠나 이 남자의 특징인 건지, 이 정도는 각오하지 않았어? 그냥 참아야지 어쩌겠어,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괜찮아.. 정도인지. 같은 상황의 이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학교에서 일을 하다 보니 학교 상황을 잘 아는 이들과의 대화가 편하고 육아를 하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사람과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참여를 할 수 있다. 내가 겪는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도 다 겪어본 일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그런 것 말이다! 그렇기에 그런 루시아들과 대화하다 보면 지금 느끼는 이런 죄책감도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마지막은 어쩌겠어...!로 끝날지라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의 대모님(나 이전의 루시아)이 나랑 같은 길을 걸으셨기에 만날 때마다 날 다독여주시고 남편에게 잔소리를 해주신다. 거리가 멀어 자주 뵙지 못하는 게 아쉬울 만큼 속 시원하다.



전국의 루시아를 찾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은 주변에 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댓글 남겨주세요. 우리끼리라도 성토대회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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