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대행 수수료는 얼마로?
본격 남편 험담 주의
남편이 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터치스크린을 이용하는 일이다.
터치스크린을 사용하는 휴대폰에는 보이스오버(아이폰), TalkBack(갤럭시) 같은 기능이 있어 화면에 나타난 글자를 읽어주기에 웬만해선 그가 스스로 처리하지만(이 또한 문제가 있는 편이다. 시각장애인 접근이 전혀 되지 않는 앱이나 사이트도 있고 소위 말하는 짤 같은 걸로 소통하고 싶어도 사진을 설명해 주진 않으니 아무래도 어렵다. 나 짤 많이 저장해 놨는데... 내 유일한 카톡 대화 친구 남편에게 쓸 수가 없네.) 문제는 키오스크다.
언젠가부터 식당에도 편의점에도 카페에도 키오스크가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이젠 키오스크 기계만을 두고 매장을 운영하는 곳이 더 많아졌다. 테이블에서 태블릿 PC로 주문을 하는 식당도 있다. 어르신들은 이제 복지관에서 키오스크 사용에 대해 배우신단다. 솔직히 말해 어르신들은 배우셔서 사용하실 수나 있지, 내 남편 같은 시각장애인들은 전혀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럼 직원에게 문의하면 되지 않느냐고? 맞다. 그렇게 직원에 문의하면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미 키오스크라는 기계가 있고 한창 매장이 바쁘다 보니 남편의 문의를 받을 직원이 없다던가, 그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니 불친절하다던가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남편은 패션에 관심이 많아 옷과 신발을 잘 사다 모으고 신발 관련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다. 눈이 본격적으로 나빠지기 전부터 옷과 신발에 관심이 많았고 시각장애라는 그의 장애는 그의 관심사에 말 그대로 장애가 될 때도 있으나 꿋꿋이 관심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렇게 사다 모은 옷과 신발을 중고거래로 파는 일도 많은데 이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중고거래를 하면서 집 앞 편의점 택배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택배를 보내려면 키오스크를 사용해야 한다. 멀지 않은 거리에 우체국이 있어 우체국 택배를 이용할 때도 있고 집 앞에 택배를 두면 가져가는 방문 택배도 있지만.. 멀쩡히 이용할 수 있는 편의점을 집 앞에 두고 키오스크를 눈을 통해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면 그 또한 차별이겠지. 게다가 남편이 주로 이용하는 특정 플랫폼은 편의점 택배와 연계되어 있고 반값 택배처럼 택배 비용을 저렴하게 지불할 수 있기에 남편의 입장에서는 편의점을 이용하는 것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당장 키오스크를 바꿀 순 없을 테니 내가 그의 눈과 발이 되기로 한다. 이것이 벌써 7년이 되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그 아이를 아기띠로 안을 때도, 아이 둘을 데리고 택배 상자를 들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불만 없이 그것을 하다가도 비 오는 날 아기를 아기띠로 안고 택배 상자를 들고 걸어갈 때는 화가 나기도 했다. 세상에 화가 나는 건지 남편에게 화가 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화가 났다. (그런 나의 불만에 남편은 한동안 방문 택배를 이용했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아이 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소아과를 다녔다. 퇴근을 하고 부랴부랴 아이들을 하원시켜 소아과에 다녀오는데 남편이 아침에 택배 부탁한 것이 생각났다. 이미 내 체력은 소아과 데려가느라 다 썼는데... 집으로 가서 택배를 들고 아이들과 편의점에 가서 택배를 부치고 집에 와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으니 남편이 왔다. 신발을 벗자마자 뭔가 분주한 그... "나 택배 보낼 게 하나 더 있는데... (눈치)(눈치) 내가 지금 빨리 우체국에 다녀올게!!!" 시간은 오후 5시 50분. 우체국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내가 뛰어가도 절대 안 될 시간, 그가 가면 나의 소요시간의 2.5배가 더 걸린다. 화가 화르륵 났다. 꾹 참았지만 새어 나오는 짜증은 이미 티가 났겠지만 나는 최대한 참으며 "내가 지금 편의점에 다녀올게." 라며 집을 나섰다.
(여기부턴 TMI)
사실 택배에 이제 크게 설레지 않는다. 물건을 워낙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고 언젠가부터 주문은 잔뜩 하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은 거의 없다. 최근에도 집에 하루도 빠짐없이 배송이 왔지만 둘째 기저귀, 첫째 티셔츠, 밀키트, 바디로션, 모기약, 자동차 에어컨 필터 등등... 내가 골랐지만 내 것은 전혀 없다. 하지만 남편 이름으로 오는 택배는 다르다. 오롯이 그를 위함이다. 그것이 되팔기 위함이든 아니든 어찌 됐든 그를 위함이다. 되팔아서 얻는 돈을 나에게 준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알기에 택배에 설레지 않음을 넘어 화가 난다. 쌓여가는 택배 상자에 짜증이 나는 것이다. (TMI 끝)
그런 존재의 택배 상자를 들고 편의점으로 가는 길. 절대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게다가 이미 나는 퇴근 후 1시간 동안 아이들과의 실랑이로 힘이 다 빠졌고 저녁 준비 및 정리 등의 일과가 남아있다. 비 오는 날 아이와 택배 상자를 함께 안아 들고 걸어갔던 그날의 분노가 떠올랐다.
편의점으로 들어가 키오스크 앞에 섰다. 이 녀석 때문이구나. 너만 터치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화가 났을 리가 없을 텐데. 눈을 감고 화면을 눌러보았다. 눈을 뜨니 엉뚱한 화면으로 넘어가있다. 남편은 이런 터치스크린 앞에서 얼마나 좌절했을까 생각하니 더 짜증 난다. 내가 죄책감을 갖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키오스크 옆에 신상품 코너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여러 상품들을 둘러보다 베이글 두 개와 김밥 한 줄, 음료수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남편의 카드로 그것들까지 계산했다. 집에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 베이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베이글로 내 짜증은 이미 다 풀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자! 이전에도 남편이 택배를 부탁하면 편의점에서 과자나 음료수 등을 하나씩 사곤 했다. 하지만 이 베이글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 이 분노는 이 베이글로 끝내자!!!!! 그렇게 평화로운 저녁을 보냈다. 결제내역을 확인한 남편은 어리둥절했겠지만.
한 달 전에 속초 여행을 갔다가 남편의 지인을 만났다. 그 또한 시각장애인이었고 그의 아내는 정안인이다. 그녀도 내가 겪는 고충에 충분히 공감해 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제 부탁을 들어줄 때마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단다! 자기도 화가 많이 났던 적이 있었는데 돈으로 받고 나서부터는 화가 조금 덜 난단다. 오호 그래? 그럼 베이글이나 과자로 때울 게 아니라 돈으로 받아야 하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수수료를 얼마를 받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50%는 좀 너무한 것 같고... 흠...
정했다. 택배대행 수수료는 10%, 단 5만 원 이하 물건일 경우 현금 대신 편의점 맥주 500ml 4캔으로 퉁친다. 그리고 난 화와 짜증을 절대 내지 않기로 한다. 땅땅땅!
남편에게만큼은 언제나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참 어렵다. 키오스크 때문에 현실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게 다 키오스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