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불에 구운 고기이다. 그중에서도 삼겹살! 그리고 구운 마늘을 엄청 좋아해서 삼겹살만큼이나 마늘도 많이 먹는다.(그럼에도 아직 인간은 안된 듯)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남편과 함께 식당에 가면 나는 이리 번쩍 저리 번쩍 바쁘다. 들어가서 자리를 찾아야 하고 메뉴를 그에게 읊어준다. '물은 셀프입니다.' 안내판을 보고 물을 가져온다. 식탁 위 이리저리 놓아주시는 반찬과 식기들을 그에게 설명해 준다. 음식이 나오면 그가 먹을 수 있도록 덜어준다. 뷔페에 가면 앞에 어떤 음식이 있는지 설명하며 음식을 그릇 위로 옮긴다. 화장실 앞까지 동행한다.
이런 일의 최고봉은 고깃집에 갔을 때이다. 고기 굽는 일을 그에게 맡기기 어려우므로 위에서 쓴 일을 하면서 고기도 굽는다. 적절히 구워졌는지 확인하고 그의 앞에 고기를 올려둔다. 반찬이 빈 것을 살펴보고 셀프바에서 가져온다. 그 와중에 틈틈이 나도 먹는다. 식당은 위험요소가 많고 조명이 어두운 곳이 많기에 주의해야 한다.
언젠가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때 종로에 있는 막창집에 갔었다. 친구와 왔었는데 정말 맛있어서 나와 같이 가고 싶다 하여 간 곳이었다. 둘 다 배가 많이 고팠다. 주문한 막창이 나왔고 나는 열심히 구웠다. 배가 고팠던 그는 열심히 먹었고 나도 먹었다. 대화도 잊고 열심히 먹던 그가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에게 말했다. "많이 먹었어?" 그때까지도 집게를 들고 막창을 굽고 있던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아니!!!! 나 아직 덜 먹었어. 더 시킬 거야."하고 2인분을 더 주문했다. 남편은 많이 당황했고 나는 당황한 그 얼굴은 모른 척하고 열심히 구웠다. 그리고 그 2인분을 다 먹었다. 그 후 종종 고깃집에 가서 식사를 할 때면 남편은 나의 동태를 살피며 밥을 먹고 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대학생 때 시각장애인동아리에서 활동했었는데, 졸업 후에도 그 모임을 종종 이어갔다. 어느 해 여름에는 부산 어느 펜션에서 모임을 했고, 15명 정도 모였는데 그중 정안인은 3명이었다. 열두 명의 시각장애인은 앉아서 담소를 나눴고, 세 명의 정안인은 상추를 씻고 젓가락과 식기 등을 준비하고 고기를 구워서 날랐다. 그날 나는 제대로 고기를 먹었을까? 열두 명의 시각장애인 중 분명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왜 모른 척 그냥 앉아 있었을까? 그때만 해도 나는 거기서 그렇게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며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분명 함께 하는 이가 아닌 옆에서 도와주는 이의 입장이라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먹고 뒷정리하고 정신이 없었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막창집에서 집게를 들고 남편에게 화를 낸 건 내가 그냥 도와주는 이가 아닌 함께 하는 이로서 섭섭함을 느꼈겠지. (... 이제 동아리모임에 가면 너네들도 도우라고 엄청 잔소리할 것 같다.ㅎㅎㅎ)
아이가 태어난 후엔 외식을 거의 못했다. 어린아이가 이유일 때도 있었고 코로나가 이유일 때도 있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아이와 남편 둘 다 챙기기 힘든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이가 유모차에 앉아만 있을 때만 해도 괜찮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그리고 그 아이가 둘이 되면서 남편까지 셋을 케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식당에 갈 때마다 더 예민해지는 나를 위해 점점 외식은 줄이고 배달, 포장 등을 택했다. 둘이서 외식하는 일은 방학을 이용한다.
분명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나 도움을 주기만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님을 앎에도 이런저런 상황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힘들게 한다. 겪지 않으면 모를 테니 구구절절 글로 쓰는 것도 읽는 누군가에게 피로감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고기를 구워주는 고깃집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뭐 그래도... 내가 할 일은 많다만 나도 남이 구워주는 고기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