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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Sep 23. 2023

오늘은 과연 누구의 손등이 앞을 보며 걸어갈까?

이리저리 바꾸며 걸어가자.

시각장애인을 안내할 때 주로 안내인의 팔꿈치(시각장애인이 키가 큰 경우엔 어깨)를 잡도록 하라고 설명한다. 그건 그와 연인이 아닐 때의 이야기였고 그의 손을 아무렇지 않게 잡을 수 있으면서 항상 손을 잡고 그와 함께 길을 걸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맞잡은 두 손의 방향으로 길을 걸어가는 데 누가 조금 더 앞서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8년 전 웨딩사진_


그와 연인이 되기 전,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 채로 함께 광장시장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서울에 온 지 1년이 막 지난 시골 쥐였고 그는 서울 쥐였다. 그런 나에게 그는 친구들과 몇 번이고 와봤을 광장시장을 소개해 주고 싶었을 터. (친구들 팔꿈치 잡고 왔을 거라는 건 비밀인 채로..) 그는 내 팔꿈치를 잡고 이동하던 어느 순간에 내 손을 확 낚아채어 잡고서는 시장으로 들어갔다. 오우 박력! (꺄!) 물론 이상한 길로 가버려서 다시 내 팔꿈치를 잡아야 했지만.... 분명한 건 그 순간엔 그가 앞서서 이 길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광장시장에서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청계천을 걸었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야맹증이 있는 그는 다시 내 팔꿈치를 잡을 수밖에 없었지만 팔꿈치를 내어준 시골쥐의 마음은 두근두근했다. 그 후 팔꿈치보다는 손을 맞잡는 사이가 되었다.


별생각 없이 손을 잡는다고 해도 손을 잡고 이끄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길 위의 주도권은 달라진다. 그가 나의 손을 잡는 것과 내가 그의 손을 잡는 것은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걸어가는 동안 안내를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선 "이 길을 걷는 데에 누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처음엔 그의 손에 내 손을 넣는다. 그러면 주도권은 그에게 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팔을 감싸 안는 듯 팔짱을 끼며 걸어간다. 걸어가는 내내 그는 나보다 살짝 앞에 서서 날 이끈다. 그러다 길을 바꿔야 한다거나 사람들이 많아지면(=부딪힐 위험 증가) 맞잡은 손의 모양을 바꾼다. 내가 그의 손을 잡는다. 그러면 내가 그의 살짝 앞에 서게 되고 그를 이끌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가정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물론 남편일 때도 있지만 아내인 나인 경우가 많다. 빌린 집도 산 지 얼마 안 된 차도 남편 이름이지만 집을 관리하는 것도 나,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도 나다. 나와 남편의 아이들에 대한 공식 문서(영유아 검진이나 예방접종 등)는 아빠인 남편을 보호자로 하여 연락이 오지만, 병원에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도 엄마인 나다.


아들은 우리 집 대장은 아빠라고 말하지만, 정 아빠는 자신을 대장이 아닌 졸병이라 말하니 내가 남편 삶의 주도권을 길 위에서처럼 안내라는 이름으로 쥐고 흔드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어쩔 때는 남편 스스로 그 주도권을 나에게 내어놓을 때도 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일 때도 있고 핑계일 때도 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의 현실이지만 그것이 버거운 적도 많다.. 그럴 때는 이렇게 글을 써보며 마음을 다스려본다.


오늘은 과연 누구의 손등이 앞을 보며 걸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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