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인 남편은 하루 중 볼펜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학교에서 나눠준 3색 볼펜도 그에겐 무용지물이라 나에게 갖다주었다. 그런 남편에게 손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대학생 때 만난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주로 사용하는 친구들은 묵자(점자를 주로 사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말하는 비시각장애인들의 문자. 당신이 소리가 아닌 눈으로 읽고 있는 이러한 글자)를 적을 줄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그들에게 글자란 점자였고 묵자로 적혀있다 더라도 음성으로 읽어주기에 글자를 몰라도 어려운 일이 없었던 것이다. 서명을 위한 자신의 이름 정도는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내 남편은 일반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 시기엔 장애인도 특수교육대상 학생도 아니었기에 한글을 읽고 쓰며 공부를 했다. 그러다 20대가 되고 장애등록을 하고 점자를 배우고 특수학교에 가서 점자 교과서로 어린 학생들과 공부를 하며 그에게 글자란 점자가 되었다.
지난주에 나의 생일이 있었다. 별로 갖고 싶은 것도 없고 그에게 꼭 받아야 하는 그런 것도 없었지만 뭔가 생일이니 특별한 것을 받고 싶었다. 그러다 그에게 손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사실 그에게 손 편지를 받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결혼을 앞둔 어느 날에 그는 무려 3장의 손 편지를 나에게 건넸다. 구구절절 사랑의 말이 쓰여 있었다. 서명할 때 아니면 볼펜을 쥘 일이 없을 그가 나를 위해 편지지를 고르고 편지를 썼다는 것에 감동받아 눈물을 찔끔 흘렸었다.
생일선물로 편지를 써달라 하자 그가 살짝 당황하다가 이내 알겠다고 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났다. 생일을 앞둔 어느 날, 그의 책상 위에 편지지가 있었다. 손 편지를 써달라고 써 달라고 말한 것도 잊은 상태라 편지지를 보며 저건 뭐지? 싶었다. 그러다 아! 내 말을 잊지 않았군! 하는 생각에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생일에 그는 편지 한 통을 나에게 건넸다. 그 옆에서 아들도 함께 편지를 내밀었다. 잠시 외출을 했던 시간에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편지를 썼나 보다. 이렇게 생일에 두 남자에게서 사랑고백이 담긴 손 편지를 받았다.
"편지지는 생각보다 크군."에서 빵 터졌다. 할 말이 그리 없었어? 고마워 남편, 내년에도 또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