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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pr 29. 2023

아이와 안과에 다녀왔다.

2주 전, 비 오는 토요일에 아이와 안과에 다녀왔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는 해부터 정기검진을 받아보기로 했었는데 올해 아이는 드디어 여섯 살이 되었다.


병원 예약을 했다고 남편이 시어머니께 말씀드리자 괜찮아 보이는데 굳이 간다며 타박을 하셨단다. 시어머니와 잘 맞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눈에 대해선 나보다 더 걱정하시는 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머님의 그런 반응에 솔직히 실망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어머니께서 그리 말씀하실 줄은 몰랐기에..

어머니 말씀처럼 육안으로는 아이의 눈에서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이 보이지 않는다.(남편은 선천성 녹내장이라 부풀어 오른 눈이 티가 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일. 어머님의 타박은 한 귀로 흘려버리고 아이와 병원으로 향했다.


나 또한 아이의 눈에 뭐 큰일 있겠어, 하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막상 병원에 간다고 생각하니 불안감이 슬슬 올라왔다. 남편이 정기적으로 가는 대학병원으로 예약을 하자니 의사 소견서가 필요하다 해서 먼저 동네 안과로 먼저 갔다. 아이들이 많이 오는 곳인지 대기실에나 어린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얘들은 왜 또 여기에 왔을까.. 안경 낀 아이들이 참 많구나 새삼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낯선 곳, 특히 병원 진료에 겁을 많이 내기에 안과에 가기 약 열흘 전부터 매일 '안과에 가서 할 것'에 대해 말해줬다.

"00아, 다음 주 토요일엔 안과에 갈 거야."

"안과가 뭐야?"

"눈이 아플 때 치료하는 병원이지."

"난 눈이 아프지 않는데요?"

"음, 지금은 눈이 아프지 않지만 혹시 눈이 아플까 봐 미리 검사하러 가는 거야."

"가서 뭘 하는데요?"

"한쪽 눈을 가리고 숫자 읽어 보는 것도 하고 기계 앞에 앉아서 눈을 대어보기도 할 거야."

"많이 아파?"

"아니, 하나도 안 아파. 근데 의사 선생님이 끝났다고 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기계 앞에 잘 앉아 있어야 해. 할 수 있겠어?"

"응!!"


이런 대화가 오고 간 열흘이 지나고 병원에 왔다.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의젓하게 검사를 받았다. 처음엔 시력에 대한 검사만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께 아빠의 선천성 녹내장 때문에 아이의 눈이 걱정되어 왔다고 말씀드리고 안압검사도 추가로 실시했다. 작은 안과에서 하는 안압검사는 기계에서 바람이 나오는 것이라 어린아이에게 실시하기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아이는 그것 또한 아주 잘 해냈다. 시력도 안압도 현재 아이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모두 정상 범위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함께 갔던 남편도 안심한 표정이었다. 이렇게 6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투정 한 번 안 부리고 검사를 받은 아이가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했다. 불안함을 숨기고 아이를 바라보지만 언젠가 아이가 내 불안함을 눈치챌까 겁난다. 지난 몇 년 간 모른척해온 불안감이 의사 선생님의 몇 마디 말로 사라졌지만, 어찌 보면 불안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3년 뒤 또 검사를 받기 시작할 아이가 하나 더 있으니. 그럼에도 불안에 잠식되지 않도록 이젠 조금 마음 편히 있으려고 한다.


남편은 아이만큼 어렸을 때부터 대학병원을 다니며 이런 검사들보다 더 많은 검사를 받아왔다고 했다. 안약을 넣고 검사를 받는 날엔 눈이 너무 아프고 어지럽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조그마한 장난감도 선물해 주었단다. 의젓하게 검사를 잘 받은 아이를 위해 남편은 아이와 함께 슈퍼로 가서 아이가 원하는 과자를 사주었다. 아이를 보며 어린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보다 더 불안했을 남편도 조금 덜 불안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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