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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턴우즈 체제의 탄생과 붕괴: 달러패권의 시작

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by 이설아빠

1944년 7월,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여름에 미국 뉴햄프셔의 작은 산장 호텔에는 44개국 대표단이 모였다. 폭격음 대신 주판알 소리가, 참호 대신 회의 테이블이 세계의 전장을 대신하던 시간이었다. 그들이 합의하려 한 것은 단 하나였다.


“다시는 대공황의 악순환과 경쟁적 평가절하로 서로를 무너뜨리지 말자.”


이 약속은 곧 실물이 되었다. "금 1온스=35달러"를 기준점으로 삼는 고정환율, 그리고 그 질서를 운영할 IMF(국제통화기금)와 IBRD(세계은행). 세계는 공통의 자(尺)를 얻었다. 그것은 금과 달러였다.


자(尺)의 힘과 균열, 그리고 몰락까지


브레턴우즈의 본질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고 강력한 설계였다. 미국이 금 1온스를 35달러에 고정하고(금 태환 보증은 외국 중앙은행·정부 대상), 각국은 자국 통화를 달러에 고정하며 초기 ±1%의 밴드 안에서 환율을 관리하였다. 무역 불균형이 생기면 IMF가 단기자금으로 충격을 흡수하고, 전후 복구와 개발은 세계은행이 맡는 분업 구조였다. 이 체제가 실제로 작동한 배경에는 전후 미국의 압도적 금 보유와 산업력이 있었고, 동시에 각국이 자본 이동을 통제하여 환율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는 제도적 현실이 있었다. 투기성 흐름이 억제되자 눈금은 흔들리지 않았고, 세계는 공통의 자(尺)로 가격을 읽기 시작하였다.


1958년 전후 서유럽이 경상거래 태환성(convertibility)을 회복하자, 이 고정환율은 기업과 정부에 전례 없는 예측가능성을 선물하였다. 기업은 환율 급등락을 걱정하지 않고 장기계약과 설비투자를 밀어붙였고, 정부는 환율 미세조정보다 생산성과 수출경쟁력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다. 달러 결제와 무역금융의 표준화는 거래비용을 크게 낮췄고, 금과 연결된 달러는 신뢰의 상징이 되었다. 무엇보다 미국의 깊고 넓은 국채시장과 은행망은 “큰돈도 값 흔들림 없이 즉시 거래”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였다. 따라서 달러라는 자는 정확할 뿐만 아니라 싸게 쓸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체제의 균열은 초기에 이미 심어져 있었다. 세계가 성장하려면 달러 유동성이 계속 공급되어야 하지만, 달러가 과도하게 풀리면 미국의 금 대비 달러 부채가 커져 금 태환 신뢰가 약해지는, 이른바 "트리핀 딜레마"가 그것이다. 1960년대 베트남전과 복지 확대로 미국의 재정·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면서 해외에 풀린 달러가 산처럼 쌓였고, 시장은 “정말 1온스=35달러로 금을 바꿔줄 수 있나?”라고 묻기 시작하였다. 서방 당국은 1961년 런던 골드 풀을 만들어 금 가격을 방어했지만 1968년 3월 결국 붕괴하였고, 공식 가격과 시장 가격이 나뉘는 부조화가 지속되며 기준점 자체에서 금속 피로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결정적 전환은 1971년에 찾아왔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미국의 금 태환 능력을 의심하며 금 인도를 요구하자 유럽과 민간에서 안전자산으로의 러시가 이어졌다. 그리고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하여 달러의 금 태환 중단을 전격 선언하였다. 이른바 닉슨 쇼크였다. 그해 12월 스미소니언 협정이 달러 절하와 환율 밴드 확대를 합의하며 연명책을 시도했지만 약발은 짧았고, 1973년 세계는 사실상 변동환율제로 전면 전환하였다. 그렇게 브레턴우즈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세계는 다시 파도치는 환율의 바다로 나아갔다.


무너진 자와 남은 작업대, 그리고 ‘다음 장’의 표지


브레턴우즈가 남긴 유산은 두 가지다. 첫째, 국제공조의 작업대인 IMF와 세계은행이다. 이 두 기관은 오늘까지 위기 때마다 긴급 유동성과 정책 프레임을 제공한다. 자는 부러졌지만 작업대는 살아남은 셈이다. 둘째, 달러의 관성이다. 금 태환은 사라졌어도, 1950년대 ~ 1960년대에 축적된 결제·금융·회계 인프라가 달러를 세계의 기본 언어로 남겨졌다. 금이 빠져도 달러의 눈금은 계속 쓰였다.


그리고 빈자리는 새로운 기준을 불렀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석유 가격표에 달러가 붙고, 산유국의 막대한 수익(오일머니)이 유로달러 시장을 통하여 세계 금융으로 순환하는 ‘페트로달러’의 서막을 알렸다. 즉, 금이 빠진 빈칸을 에너지와 금융 네트워크가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달러패권 2장면에서는 왜 석유가 새로운 기준점이 되었는지, 달러 패권의 2막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는지, 페트로달러의 탄생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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