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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런치팀 Aug 19. 2019

마케터와 라이터 그 중간 어디쯤

임채민 (前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에디터)

에디터라는 일의 시작


에디터로 오래 일을 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에디터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다소 부담이 있다.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고민까지 옅지는 않다고 생각하기에 에디터로 지낸 경험과 함께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초보 에디터의 좌충우돌 적응기 정도로 가볍게 봐주시길.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에서 일하면서 여러 종류의 글을 썼다. 저널, 뉴스레터, 보도 자료, 클래스 소개문, 페이스북 등 포스팅 멘트까지. 거기에 세바시에는 1,000개가 넘는 강연 영상이 있어 글을 쓰는 것보다 각 영상 속 내용을 파악하는 게 더 벅찰 정도였다. 요리로 비유하면, 수많은 좋은 재료를 가지고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어서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지금은 세바시에서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조심스레 내 경험만 전한다.


처음 에디터로 일을 시작했을 때는 세바시 연사분들에게 연락해서 원고를 받는 게 주 업무였다. 모두 바쁜 분들이기에 새 원고를 청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기꺼이 승낙하고 원고를 보내주시는 분이 더 많았다. 적극적인 분들도 꽤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직접 찍은 영상을 첨부해주거나, 어떻게 하면 잘 알려질지 마케팅 분석까지 해주는 분도 있었다. 스스로 마감일을 정해 꾸준히 원고를 보내 주거나 몇 번이고 수정을 감수하고 원고를 완성해주는 분까지,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아 감개무량할 지경이다. 프로답게 일하는 태도를 제대로 배웠다.


남이 쓴 글 받아서 편집하는 일이 뭐 그렇게 어려울까 싶었지만 녹록지 않았다. 글을 ‘복붙’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글에 따라 다듬고 편집해야 하는 방법과 방향이 다 달랐다. 너무 길어 모바일에서 보기 힘든 글은 분량을 줄여야만 한다. 옥고를 함부로 건드리는 건 실례다. 적어도 열 번 이상 읽으며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것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쳐냈다. 반대로 너무 짧은 글은 보조 자료를 넣어서라도 분량을 늘려야 했다. 글에 맞는 섬네일 이미지를 찾기 위해 온라인 이미지 사이트를 몇 시간이고 뒤지는 것도 티 나지 않지만 큰일이었다.



마케터와 라이터 그 중간 어디쯤


세바시에서 에디터 일을 한다고 하자 교정/교열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아마 에디터 혹은 편집자라는 일을 단순 출판업자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전통적 의미의 에디터가 아니다. 편집보다는 쓰는 일을 주로 했다. ‘실 고객과 잠재 고객을 대상으로 회사 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글로 전하는 사람’에 가깝다. 마케터의 영역과도 맞닿는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회사 서비스를 잘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니즈를 어떻게 회사 서비스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득력 있게 매력적으로 써내려 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글의 시작과 목적이 회사와 회사 서비스를 알리기 위함이지만 그것만을 위한 글은 지양해야 한다. 사람들은 홍보글을 직감적으로 안다. 읽는 이들이 관심을 보일만한, 도움이 되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뤄야 한다. 그래야만 글에 반응한다. 이 선을 지키는 것을 일의 기본으로 삼았다. 기준과 기본이 있어야만 흔들리지 않는다.



에디터로 더 걸어보겠습니다


세바시 에디터로 일했던 것은 내게 즐거운 경험이었고 성장의 기회였지만, 나와서 다음 걸음을 준비하며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막상 내 포지션은 애매했다. 마케터는 퍼포먼스 마케팅이 가능한 인력을 주로 뽑고, 콘텐츠 마케팅 영역에서는 최근 글보다 동영상을 다룰 줄 아는 이를 더 선호한다. 에디터의 기본적 역량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에디터로 걸어갈 길이 당장은 잘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이 길을 걸어가는 게 맞을까, 이 글을 써도 될까'를 글을 쓰는 내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다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글을 읽으니 안 보였던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그 길을 한 번 걸어보고 싶다는 용기를 얻게 됐다. 도망치는 것보다 부딪히고 넘어지는 길을 택하겠다.


이규리 시인의 책 『시의 인기척』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르네 마그리트는 ‘단어와 이미지’라는 글에서 말한다. “대상은 그 이름이나 이미지가 가지는 똑같은 기능을 결코 완성하지 못한다.” 완성하지 못하므로 시인들은 그 일에 죽자고 매달려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말처럼 완성에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짝 맛본 에디터란 직업의 중독성에 빠져버렸다. 어떤 에디터가 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읽는 이와 쓰게 한 회사, 쓰는 나 자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혼자가 아니다. 이 일은 많은 조력자와 함께 목표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걸음의 고됨이 달라지지 않겠지만 함께라면 더 오래, 멀리, 즐겁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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