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정 (작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저자)
2018년에 낸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인기를 얻은 덕에 전업 작가가 되기 전, 나는 에디터였다. 에디터라면 사람들이 무언가에 반응하기 시작할 때 반드시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기획안이 채택되려면 무엇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이 유행을 따르는지, 어떤 변화가 이 트렌드를 이끄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니까. 이처럼 모든 것에 "왜"라고 질문하는 연습을 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동시대 사람들의 마음이 보내는 주요 메시지를 포착하게 되었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잘 아는 내용이 있더라도 정보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이를 대중의 언어로 변환해서 다시 풀어내는 게 몸에 익었다.
한편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고, 내가 몸담았던 잡지 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민 끝에 잡지는 떠나기로 했지만 그간 에디터로서 익힌 업무 방식을 버리는 건 아까웠다. 에디터는 전문가와 대중의 중간 지점에서 정보의 양과 질을 조정해 소개하는 번역자이기도 하다. 새로운 정보를 공부하거나 경험하고 그것을 다시 편집해 소개하는 일을 하다 보면 개인의 성장과 커리어의 성장이 함께 이루어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잘 맞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것이 어려운 걸 알지만 더 욕심을 내면 왜 안 되는 걸까. 나는 에디터 일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당시 마케팅과 홍보 업계에서는 '브랜드 저널리즘'이 핫한 방법론으로 떠올랐다. '브랜드'와 '저널리즘'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국내 대기업 사이에서 유행처럼 인기를 끈 건, 코카콜라, 레드불, 애플 같은 기업들이 만들어낸 자사의 브랜드 홍보 콘텐츠가 호응을 얻으면서부터다. 그전까지 기업들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때마다 신문과 잡지, 방송 등에 보도자료를 내거나 홍보비를 써가며 기사를 부탁했다. 그런데 기업들이 한순간 깨달았다. "아이, 그냥… 우리가 미디어를 만들면 안 되나?"
그렇게 나는 국내 한 대기업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론칭한 브랜드 저널리즘 미디어의 에디터가 되었다. 잡지 에디터로 일한 지 6년 만의 일이다. ‘에디터’라는 이름은 같았지만 하는 일은 상당히 달랐다. 신흥 업계라 전문가가 없어 얼떨결에 내가 편집장을 맡아 팀을 꾸렸다. 이 생태계 속에서는 기업 홍보팀 수준의 정보력과 광고대행사 직원 같은 태도와 행동력, 잡지사 에디터답게 사진과 글을 뽑아내기를 요구받았다. 똥인지 된장인지 눈으로 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그때 다양한 종류의 똥을 먹었다. 된장이라 확신하고 듬뿍 찍은 것은 대부분 똥이었다.
어쨌든 버텼다. 새 업계에 맞춰 업무 방식을 새롭게 배웠다.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고 했지만 죽을 정도로 힘들면 그냥 그만두는 게 좋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나는 다음 달 카드 값을 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버텼다.
디지털 콘텐츠의 세계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에디터로서 나의 시선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전까지 잡지 에디터로서 익힌 원칙들이 있었다. 내가 아는 에디터는 키워드를 제시하는 사람이지 떠먹여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잡지사에서는 함축적이고 폼 나는 제목을 선호한다. 책 제목으로 치면 ‘여행의 이유’ 같은 것. 그런데 디지털 세계에서는 이런 은유적인 제목이 통하지 않았다. 드래그하며 콘텐츠를 서핑하거나 검색한 키워드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독자들은 직관적이면서도 흥미를 유발하거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제목이어야 클릭했다. 그에 따라 ‘여행의 이유’는 ‘세계 60곳을 여행한 소설가 A씨가 말하는 최고의 여름휴가지 5’ 같은 식으로 바꿔야 했다. 처음 이런 식의 제목을 지었을 때는 자괴감에 빠졌는데 나중에는 어떤 제목을 짓더라도 ‘사람들이 클릭하고 싶어 지는 제목인가?’를 묻게 되었다.
디지털 콘텐츠의 특성상 기사 하나하나의 조회수를 볼 수 있고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콘텐츠를 접하는지, 평균적으로 몇 분 동안 콘텐츠에 머무르는지 알게 되자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미리 설계했다. 예를 들어 ‘퇴사’ 키워드는 금요일보다 월요일에 유입률이 높다. 이처럼 주간, 월별, 시간별 검색어 키워드를 분석해서 사람들이 특정 콘텐츠를 찾을 것이라 예측하고, 그보다 1주일 전쯤 기사를 내보내면 포털 사이트 메인에 소개되어 많은 사람이 볼 확률이 높았다.
사람들의 행동 양식에 맞춰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연습도 했다. 사람들이 콘텐츠를 읽다가 이탈하는 시간을 보니 대개 1분을 넘지 않았다. 참을성 없는 사람을 위해 문단을 잘게 나누고 이미지를 넣어 피로도를 줄였고, 기사의 앞부분만 읽고 나머지는 휘리릭 내려버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에 착안해서 앞부분에 중요한 정보를 집중시켰다. 집중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서 글을 끝까지 드래그한 뒤에도 자기가 무엇을 읽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엔 글에 번호를 매기거나 중간중간 요약하고 주요 메시지를 반복했다. 밀도가 높은 문장, 어려운 단어, 긴 글은 사람들이 읽다가 포기하거나 화를 내기 때문에 입말로 쉽게 풀어서 쓰고 짧게 썼다. 이도 어렵게 느끼겠다 싶으면 카드 뉴스로 만들어서 이미지와 텍스트를 통일시켰다.
이 시기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만드는 에디터의 수요가 늘어나서 채용 과정에 자주 참석했다. 내가 입사할 때만 해도 에디터라고 하면 ‘상식’, ‘글쓰기’, ‘깊이 있는 취향’ 정도를 테스트했는데 디지털 미디어 에디터들에겐 얼마나 넓고 얕은 취향이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들은 워드가 아닌 PPT로 카드 뉴스를 만들어서 제출했고 개인 미디어로서 팔로워가 얼마나 많은지 설명하며 자신이 대중에게 소구하는 화법에 능통하다는 걸 입증해야 했다. 이제 에디터의 역할은 영업력 있는 마케터와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사이 어디쯤에 자리한다.
해외에서는 버즈피드(BuzzFeed), 국내에서는 피키캐스트(Pikicast)가 크게 히트하면서 미디어들은 서둘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널을 열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잡지에서는 그렇게 잘 읽히고 멋졌던 기사가 어째서 페이스북이란 그릇에 담기면 밋밋하고 매력 없는 콘텐츠가 되는지! 많은 미디어들이 디지털팀을 꾸려 온라인으로의 성공적 전환을 꿈꿨지만 조회수가 나오지 않아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몰랐다. 냉면은 놋그릇에 담고 설렁탕은 뚝배기에 담아야만 먹음직스럽다는 걸. 신문이나 잡지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그대로 디지털로 옮기면 가독성이 떨어졌다. 반대로, 한창 유행하던 하상욱의 시처럼 짧은 콘텐츠는 페이스북에서는 보기 좋았지만 인쇄 매체로 옮기면 어쩐지 허술해 보였다. 이는 출판 만화의 프레임과 웹툰의 프레임 차이로 생각하면 쉽다. 모바일 구조에 맞춰 웹툰을 그려서 히트한 대표적 만화가가 강풀이다.
블로그 콘텐츠 위주이던 브랜드 저널리즘팀을 떠나, 유튜브 전용 영상과 페이스북 전용 콘텐츠를 주로 만드는 미디어의 디지털 콘텐츠 총괄 에디터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채널에 최적화된 포맷에 집중하는 스킬을 습득했다. 같은 기획 아이템이어도 이를 페이스북용으로 제작할지,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할지에 따라 결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라면 어떤 채널에 제작할지 결정한 후 카드 뉴스로 내보낼지, 글과 사진으로 내보낼지 결정해야 했다. 콘텐츠를 만든 후에도 배포하기만 하면 끝이 아니다. 눈길을 끌 만한 제목과 대표 이미지를 고르고, 사람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거나 해당 페이지에서 이탈하지 않고 다음 콘텐츠를 보도록 설계해야 했다. 댓글을 분석해서 다음 콘텐츠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했다. 트렌드를 데이터로 정리하고, 타깃을 세분화하고, 비주얼과 형식에 집착하며, 독자의 다음을 예측하는 설계자가 되는 것. 디지털 미디어 에디터를 하면서 배운 핵심 능력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쓸 때는 내가 에디터로서 배운 기본 정서와 교훈을 최대한 활용했다. 흑인 여성들의 체험을 소설화하는 작업을 주로 하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은 엘리너 와크텔(Eleanor Wachtel)과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는 젊은 흑인 여성이, 배경 혹은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에 등장하는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제가 잘 찾아봤으면 한두 권은 발견할 수 있었겠더군요. 어쨌든 당시 저는 그런 내용이 담긴 읽을 만한 책을 원했기 때문에 직접 그런 책을 썼습니다.”
나도 내가 읽고 싶지만 세상에 나와 있지 않은 책을 찾다가 그런 책을 직접 썼다. 30대 여성 직장인으로서 회사에서 고군분투하고 갑질에 시달리며 연애와 가족 관계에서 흔들릴 때,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찾은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종교인, 의사 또는 교수였다. 그들의 경험은 내 것과 많이 달랐고 그들의 해결책은 어쩐지 막연했다. 에디터는 비슷한 소재 사이에서 디테일을 다듬는 훈련이 되어 있다. 나만의 디테일은 당사자인 젊은 여성이 솔직하고 씩씩한 이야기를 써서 공감을 얻는 것이었다. 2017년은 ‘갑질’과 ‘페미니즘’이 사회의 주요 이슈이기도 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2030 여성들을 타깃으로 당장의 현실적 대처법에 대해 썼다.
책을 내기 전 제목부터 먼저 정했다. 제목은 직관적으로 와 닿으면서도 호기심을 유발해야 했다.『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고 제목을 짓고 나자 호쾌했다. 표지는 2030 여성들이 소장하고 싶게끔 화사하고 강렬한 일러스트를 써서 제목과 톤을 맞추었다. 목차는 광고 카피같이 썼고 문장은 짧게 핵심을 반복했다. 완독의 경험이 별로 없는 디지털 세대는 읽기 전에 책의 분량부터 확인한다는 데 착안해서 글을 축약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편집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도 끝이 아니다. 사람들이 반응할 만한 곳에 가서 적극적으로 미끼를 던져 발견되어야 한다. 책의 프롤로그는 카드 뉴스로 보기 좋게 만들어서 주요 검색엔진 메인과 페이스북 피드에 노출을 노렸고, 브런치와 ㅍㅍㅅㅅ 등 독자 충성도가 높은 미디어에 글을 연재해서 인지도를 높였다.
이런 노력 때문만은 아니지만 운 좋게도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2018년 상반기,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되었다. 2019년 6월 현재까지 100쇄를 넘게 찍었고, 일본 등 5개국에 번역되었다. 다양한 채널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연습을 해보지 않았다면 등단한 작가도 아니고 유명 작가도 아니었던 내가 이렇게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에디터로서 내가 익힌 기술 중에는 세계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토대로 타인을 설득하는 최적의 방식과 시기를 찾아내는 일도 있었다. 제대로 말 걸고 싶으니까, 에디터는 백 번 듣고 한 번 말한다. 이처럼 에디터의 현실감과 대중적 정서를 계속 유지하면서 오래오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넘치는 세상에서 꿋꿋하게.
(이 글은 『잡스 - 에디터: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단행본에 실린 정문정 작가의 에세이를 재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