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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Sep 08. 2022

누구나 쌍욕을 참으며 살아간다

들숨엔 공기를 날숨엔 쌍욕을

최미야 작가님 글에서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 오늘 문득 떠올라 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직장에 룰루랄라 웃으며 출근하는 사람은 없듯이 누구나 매일의 불행과 짜증을 견디며 살아간다고.


나는 평소 욕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다. 화가 나도 쌍욕이 떠오른다기보다는 문장으로 감정을 풀어내 보려는 사람에 가깝다. 차분하거나 침착해서는 전혀 아니고, 시원하게 쌍욕 한 번 제대로 못 내뱉는 소심이라서 그렇다. 누가 봐도 쌍욕을 내뱉었어야 하는 순간에서도 아, 내가 잘못한 건가? 하고 앞뒤를 따져보다 타이밍을 놓친다. 그러곤 집에 와서 이불 백 번 발로 차면서 아이구 이 멍청한 것아,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지, 하면서 혼자 시나리오 쓰는 타입.


나이 서른 넘고서는 싸움이 나도 쌍욕으로 대처할 일은 잘 없었다. 어른 입에서 쌍욕 들어본 가장 최근 일은 기껏해야 접촉사고 났을 때 정도? 상대측이 지가 잘못해놓곤 삿대질에 쌍욕을 퍼부었다. 그래도 나는 '보험사 부르시죠' 한마디 하고 차 안에 앉아있었으니 내 입에 욕 담을 일은 참 없었다.


그런데 요 며칠 자꾸 단전에서 욕이 치밀어 오른다. 이유 있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부모와의 갈등.

 우울과 마음의 고통은 야금야금 내 에너지를 끌어내어 쓴다. 에너지가 빠져나간 곳에 남는 것은 무엇이냐. 내 경우는 날 것의 쌍욕이었다.

평소 욕이라곤 생각조차 안 하고 국어 교사로서 바른말 고운 말 쓰기에 힘쓰던 내가, 바쁜 아침시간에 겨우 준비 다 해서 나가려는데 자식이 음식을 바닥에 왕창 쏟았을 때. 깊은 곳에서 *발 *같네 진짜, 이런 문장이 자동 완성되어 내 머리속에 전광판처럼 반짝거렸다(물론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애들 밥 겨우 다 차리고 내 저녁 메뉴로 하나 남겨 둔 샌드위치를 누군가가(심증 가는 사람은 있지만) 홀랑 먹어치웠을 때. 별 *같은 상황을 다 보네, *발! 하는 일갈이 가슴속에서 우러나왔다.

마음에 힘이 있고 몸에 힘이 있으면 이런 원초적인 말로 내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후련했다. *발 사는 거 진짜 *같네!!!!!!!!!!!!!!!!


트위터 타임라인을 훑다 우울하고 마음이 아플수록 햇빛 받으며 자꾸 걸으라는 내용을 봤다. 운동을 해서 몸이 건강해지면 마음이 지치려고 할 때 몸이 받쳐줘서 감히 마음이 바닥으로 못 떨어지게 한다고, 강제로 몸이 마음을 끌어올려 일으킨다고 괴로우면 나가서 걸어라!라는 트윗들이 줄을 이었다. 다들 명절 앞두고 마음이 고단한 건가.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꾸역꾸역 걸으려는 건가.    

아무튼 일견 옳은 말 같아 축축 쳐지는 몸을 이끌고 가을볕 아래를 억지로 20분 정도 왔다 갔다 걸었다. 그러고 나니 정말 힘이 조금 나서 요가원도 다녀왔다. 땀을 흘리고 나니 씻을 기분도 나서 샤워도 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더니 물로 꼼꼼하게 몸을 씻고 향기 좋은 바디크림을 바르니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려던 쌍욕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숙인다.


그래.

누구나 그 정도의 쌍욕을 참으면서 살아간다.

그래도 참는 게 어디야.

나는 오늘 시가에 전 부치러 애 둘 데리고 간다. 들숨엔 공기를, 날숨엔 쌍욕을 내뱉고 싶은 마음을 잘 다스려봐야지. 누구나 그 정도는 참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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