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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Oct 11. 2022

기어이 코로나가 뚫고 들어왔다

기어이 코로나가 우리 집을 뚫고 들어왔다.

어린 학생들을 많이 대하는 나는 4월에 이미 코로나를 겪고 지나갔고, 애들은 남들 다 걸릴 때 걸리지 않았었다. 그래서 아이 코로나 격리하는 게 얼마나 괴로지 실감하지 못했던 나. 우리 애들은 슈퍼 면역자가 아닐까? 하고 마음 놓았던 나. 반성한다.


재난상황 지난 금요일 오후부터  시작됐다.

목이 칼칼하다던 배우자가 제일 먼저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어른 한 명 밥 챙기는 게 어려우랴. 배우자가 그동안 휴가 한 번 맘 편히 못 썼는데,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 김에 푹 쉬어라 하는 생각으로 매 끼 나름 탄. 단. 지 계산해서 건강식을 해다 바쳤다.

그러고 연휴. 주말 동안 애들을 자전거공원에서 뺑뺑이 돌리고, 홈플러스에서 재난 대비 장을 빵빵하게 봐서 들어왔다.

그런데 오전엔 멀쩡하게 춤추고 노래 부르던 첫째가 일요일 오후부터 열이 치솟기 시작했다.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안 떨어지는 걸 보고 직감했다.

얘한테 왔구나.

평소 첫째가 아빠 팔베개를 베고 딱 붙어 자는지라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전문가 신속항원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서 괜찮을 줄 알았더니만 잠복기였던 거다.

배우자 확진된 지 이틀 만에 첫째도 결국 응급실에서 확진받고, 폐 사진 찍고, 피검사하고(으악! 잠시만요! 잠시만요! 엄마! 나 하기 싫어요!→어차피 해야 돼, 움직이면 더 아파!→엄마, 나 나갈래요! 못 하겠어요! 나 그냥 아프고 말래요! 열나고 아픈 게 더 나아요!→고개를 돌리고 딴 데를 봐. 그러면 하나도 안 아파.→거짓말! 지난번에 피검사할 때도 아팠어! 엄마 거짓말!) 열이 안 떨어져서 해열제 링거 달고... 갖은 실랑이 끝에 열나는 것 빼고는 다른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 왔다.


첫째의 응급실 난동에 혼이 쏙 빠져서 정신도 못 차렸는데, 아빠랑 같이 격리에 들어간 첫째는 요구사항이 많았다. 열이 떨어지니 기운이 펄펄 나는지 아픈 아빠를 밟고 다니면서 루미큐브 하자, 부루마불 하자 난리를 쳤다. 나에게도 아빠 폰으로 계속 전화해서 삼국지 만화책 1권부터 50권까지 문 앞에 놔둬라, 그림 그릴 종이랑 색연필 갖다 놔라, 단산 포도가 먹고 싶으니 씻어 놔라, 샤인 머스캣 얼려서 가져다 놔라 아주 그냥 상전이 따로 없었다. 애가 덜 아프니 내가 그래도 이렇게 걱정을 덜할 수 있는 거지,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심부름을 했다.


문제는 둘째 녀석이었다. 둘째는 잠복기였던 첫째와 며칠 잠도 같이 잤고 간식도 나눠먹었는데 아무 증상이 없었다. 전문가 신속항원 검사에서도 음성, 집에서 한 키트 검사(진짜 비강 깊숙이, 거의 눈까지 면봉을 찔러 넣어 꽤 정확도가 높았을 거라 확신한다)에서도 음성이 나왔다. 밥도 잘 먹고 떼도 잘 쓰고 잘 뛰어놀고 이마도 시원하고 아주 멀쩡했다.

일단 나는 백신 3차 접종자에다 이미 코로나가 한 차례 지나가서 괜찮을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역시나 괜찮았다. 한 주 동안 수업을 취소하는 바람에 학부모들에게 눈치가 많이 보였을 뿐.


앞으로 배우자 격리 해제까지 3일. 첫째는 5일.

제발 그동안 둘째와 내가 살아남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했다. 띄엄띄엄 확진받아서 격리기간이 늘어나지 않길. 아기들과 집에 갇혀 괴로운 시간을 서로 보내지 않길, 그리고 모두 격리 해제될 때까지 내가 이성의 바닥을 보이지 않고 몸과 마음 건강하게 잘 수발들 수 있길 간절히 간절히 바랐다.


다음 주에 브런치에 제발 이런 글을 쓸 수 있기를.

"폭풍이 휩쓸고 갔지만 우리는 결국 살아남았다."


+ 이걸 쓰고 나서 1시간 뒤 결국 둘째도 신속항원검사결과 두줄이 떴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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