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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ul 14. 2022

지나가는 사람 1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NPC로만 존재하는 순간

오늘 인터넷에서 "인생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순간은?"이란 질문글을 읽었다. 그 글에 달린 1번 댓글이 "돌잔치 때"였다. 돌잔치를 이길 수 있는 대답이 없어서 다들 '졌다...' 하는 분위기로 타임라인이 이어졌다. 그 반응들이 웃겨서 픽 웃고 말았는데 왠지 오늘 오전 내 나는 인생에서 인기 있었던 순간 있었던가, 하고 기억을 더듬어보게 됐다.


남들이 한창 예쁘다는 소리 듣는 이십 대 초중반, 나는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범대 정독실에서 뱅뱅이 안경 쓰고 추리닝 장착한 채 살았다. 같이 시험 준비하던 친구 3명은 다 사귀는 사람이 있었다. 걔들은 아침에 정독실 와서 공부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매무새를 매만진 뒤 남자 친구와 점심을 먹고 들어오곤 했다. 애인이 없던 나는 그런 '정서적 환기'를  시간이 없었다. 아침에 와서 인강 듣다가, 배 고프면 혼자 학식 먹고, 다시 정독실 와서 교육학 문제 풀고 오답 노트하고... 그런 식이었다. 매일이 똑같았다. 새 옷 살 일도 없었고 미용실 갈 일도 없었다. 하루 종일 입 한 번 열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때 느꼈다. 나는 이 정독실의 지박령 같은 존재라고. 정독실 NPC( Non-Player Character의 줄임말. 플레이어가 조작하지 않는, 게임에 배경처럼 존재하는 캐릭터. 퀘스트 제공이나 스토리 진행 등의 역할을 맡는다)나 다름없다고. 이 세상은 내가 있든 없든 별 상관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그러다 취업에 성공해 정독실 지박령 신세를 벗어나게 된 후 첫 월급으로 출근복을 여럿 장만했다. 에스닉한 패턴이 있는 블라우스에 남색 스커트, 빨간 줄무늬 포인트가 있는 투피스 실크 정장, 허리선을 스카프로 묶는 카키색 원피스. 발 라인이 예쁘게 빠진 정장 구두. 책 여러 권을 넣어도 모양이 무너지지 않는 탄탄한 출근 가방.

화장도 열심히 했다. 피부톤을 한 톤 업 시켜주는 CC쿠션. 속쌍꺼풀 눈을 보정해주는 매끈한 붓 아이라이너. 각종 신상 립스틱과 틴트. 속눈썹을 하늘까지 추켜올려주는 매그넘 마스카라 같은 것들로 아침 단장에 시간을 쏟았다. 앞머리 고데기는 기본. 이렇게 매일의 전투 준비(?)를 마치고 출근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혹은 주목받았던 시기는 이때가 아닌가 싶다.


첫 직장이라 일 잘하고 싶어서 매일 자발적으로 야근했기에 직장 동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전형적인 아가씨상(긴 생머리-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원피스룩-하이힐)' 하고 다녔기에 또래 동료들에게 외모적으로 어필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인생 최대로 이성에게 연락도 많이 받았고, 많은 만남을 가졌다. 저녁을 먹자거나 주말에 같이 놀러 가자거나 하는 약속들이 끊임없이 생겼다. 그때 생각했다.

아, 나 살아 있구나, 나 관심받고 있구나.


그러다 이십 대 후반에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지 1년 만에 임신과 출산을 겪었다. 아기를 낳고 처음으로 유아차를 밀고 나던 날을 기억한다.

20대에 출산한 터라 스스로 외모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입고 나간 옷도 정장은 아니지만 단정하고 깔끔했다. 하지만 느꼈다. 뭔가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세상에서 '지나가는 사람 1'로 내 캐릭터가 재설정되었다는 것을. 임용고사 준비하던 때같이, 세상의 지박령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유아차를 밀고 다니는 세상은 내가 아가씨일때 살던 세상과는 아주 다른 곳이었다. 일단 혼자 카페도 못 갔다. 계단 턱이 있으면 못 갔고, 당겨서 여는 방식의 문이어도 못 갔다. 유아차와 함께 카페 문을 열려고 낑낑거려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투명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그 어떤 호의도 받지 못했다. 아줌마, 낮에 할일없이 유아차 밀고 다니는 아줌마 1로 정체성 조정돼버린 것이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보도블록에 유아차 바퀴가 끼여서 진땀을 흘리고 있어도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휙휙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고 해도 아무도 유아차 들어갈 자리를 양보해주거나 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혼자 뚝 떨어져 나온 느낌이었다. 내가 아무한테도 안 보이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괜스레 눈앞에 손을 휙휙 휘저어본 적도 있었다.

흠, 노약자의 삶은 이런 거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누군가의 친절에 기대어 때로는 민폐를 끼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거군. 그런데 내가 그런 삶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있군. 하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 영역으로 진입을 해버렸고, 나는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애 둘을 키우는 지금은 그런 무관심조차 고마울 정도다. 조금만 차선 변경을 잘못하면 씨발 아줌마!!! 이런 소리를 듣는다. 식당에서 애가 자꾸 울고 뭔가를 떨어뜨리니 밥값을  선불로 냈는데도 그만 좀 나가 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다. 애가 좀 울고 떼를 써도 사람들이 좀 모르는 척해주면 그게 진짜 고맙다.


그래도 요즘은 요령이 생겨서 애 데리고 못 들어갈 만한 데는 아예 안 간다. 층간 소음을 일으켜도 괜찮은 곳, 아기 의자가 비치되어 있는 곳, 어린이 수저를 마련해 두는 곳을 잘 기억해 둔다. 친구들과 가장 많이 교환하는 정보가 '애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들이 가장 환영받는 장소는 홈플러스 문화센터라 생각하는데, 그마저도 코로나로 거의 문을 닫아 둘째 키울 때 참 힘들었다.




누구에게나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인기 있었던 순간이 한 번은 지나간다고 한다. 난 이미 그 순간이 지나갔으니 이제는 세상에서  '지나가는 사람 1'로서 나만이 아는 내 작은 삶을 나름대로 풍성하게 채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존재감 없어지는 거, 내가 '나' 자체로서가 아니라 아줌마나 애 엄마로서만 존재하는 것 때문에 가슴 아파 운 적도 많았다. 어딜 가든 '없는 사람' 내지는 '무시해도 되는 사람'취급을 받는 게 너무 억울했다.


 그런데 이제는 좀 괜찮다. 내 존재감이나 관심, 뭐 그런 건 모두 내 자식에게 대물림됐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자식들은 우리 집에서 가장 빛나고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똥만 잘 싸도 기립 박수를 받으니까. 내가 인생에서 갖고 있었을 조그만 인기, 사람들에게 받을 수 있었던 사랑, 그런 거 다 이제 나한테 없어도 된다. 내 자식이 살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러면, 나는 세상의 '행인 1'로 존재하면서,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좋은 부분들을 내 자식에게 넘겨줄 용의가 있다.  


무엇보다 나는 애들한테 세상에서 받았던 어떤 큰 사랑보다 더 큰 사랑과 존재감을 받았으니까.

그래, 그거면 된 거지.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우리 집 NPC로서 맡은 임무인 첫째의 간식 준비를 수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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