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를 버리고 '역할'로 살았나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_(첫번째 이야기)

by 국박사

이 글은 제가 출간한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조직생활 속에서 나를 잃고, 성과 중독에 빠졌다가, 결국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나 자신과 화해하기 시작한 이야기를 5회에 걸쳐 나누고자 합니다.


당신은 언제부터 '괜찮은 사람'인 척하기 시작했나요?


나는 오랫동안 '배수의 진'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물러설 곳이 없을 때 사람은 진짜 실력을 낸다고 믿었다. 그래서 늘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퇴로 없는 결단,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 마음가짐.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성과를 내야 했고, 책임을 져야 했고, 다 해낸 사람처럼 살아야 했다. 그게 나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나도 나에게 늘 말했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잖아."
"그까짓 감정쯤은 넘겨야지."
"할 수 있어. 해내야 해."

그렇게 오래, 나는 나를 밀어붙이며 살아왔다. 사람들의 인정에 기대어 자존감을 세우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속으로는 울면서도 '괜찮다'고 말하는 법을 익혔다.



착한 사람이라는 족쇄


직장생활을 하면서 '뼈를 갈아넣는다'는 말이 정말 내 얘기 같았던 시기가 있다. 매일을 버티는 게 아니라 증명하는 하루였다.

나는 항상 책임지는 자리, 팀을 이끄는 자리에 서 있었다. 특히 내가 일하던 곳은 공기업의 자회사였다. 사장은 늘 정해진 임기를 채우기보다 상위 기관의 인사에 따라 교체되었고, 그때마다 나는 나를 다시 증명해야 했다.

"이번 사장에겐 또 어떤 모습이 필요할까."
"이제는 뭘 해내 보여줘야 할까."

내 자리와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늘 실적을 만들어야 했고, 늘 분위기를 읽어야 했고, 늘 나를 몰아붙여야 했다.

그래서 난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사장이건 임원이건, "그 사람 참 괜찮아" "일 잘해"라는 말을 들으면 살아남은 느낌이 들었고, 그 말을 듣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를 위한 삶은 아니었다. 불쾌한 요구에도 웃으며 응했고, 불합리한 상황에도 무리해서 버텼고, 팀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아래 나는 자주 나 자신을 희생하며 살았다.

어느 순간, '착한 사람'이라는 말은 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인정과 사랑을 혼동하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그 말이 필요했다. 그 말을 들어야 내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고, 그 말을 못 들으면 내가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소모하면서 살았다. 몸이 망가지는 걸 알면서도, 가족과의 시간을 줄이면서도 '지금은 버텨야 할 때'라며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결과는 빠르게 따라왔다. 경쟁사보다 먼저 성장했고, 성과도 분명했다. 나를 찾는 외부 요청도 많아졌고, 업계에서도 이름이 알려졌다.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내가 나를 밀어붙일수록 사장은 조직원들 앞에서 나를 칭찬했다. "이 사람은 다르다." "이 친구는 믿을 수 있다." 그 말들이 회의실을 메울 때, 나는 부끄럽게도 그걸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느꼈다.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나는 더 일을 벌였고, 더 나를 깎아냈고, 더 많은 것을 포기했다. 그중 하나는 내 몸이었고, 또 하나는 내 가족이었다.

하지만 그땐 그게 사랑받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그건 교환이었다. 성과를 내면 칭찬을 주고, 눈치를 보면 기회를 주는, 철저한 거래였다.


성과 중독의 정체

성과를 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결과로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숫자와 지표로 증명하는 건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그 '좋은 기분'이 없으면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성과가 없으면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실적이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 있었다.

계획을 세우고, 성과를 달성하고, 지표를 달성했을 때만 안심했다. 그때만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다.

성과가 없는 시기엔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지금 나는 아무 가치 없어." "이대로 가면 끝이야."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내 전부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성과 중독이었다. 그리고 그 중독의 뿌리는 깊은 자존감 결핍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몰랐다. 성과로, 인정으로, 칭찬과 비교 속에서만 내 존재를 겨우 붙잡고 있었다.

문제는 그 중독이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한 번 채우면, 곧 더 큰 실적으로 보완해야 했다. 성취는 늘 빠르게 낡았고, 나는 늘 더 큰 결과로 자신을 다시 덧칠해야 했다.


나를 지우며 사는 법

나는 내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표현하면 안 된다고 배워온 사람이었다.

상대가 불편할까 봐,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오해를 살까 봐 내 속마음은 항상 뒤로 밀렸다.

회의 중에 억울한 말을 들어도 웃으며 넘겼고, 밤새 준비한 결과가 쉽게 무시당해도 "괜찮습니다"라는 말부터 나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진짜로 괜찮은 건지, 아닌 건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감정이 올라오기도 전에 타인의 표정부터 살폈다.

눈치가 빠르다는 말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건 내 감정을 후순위로 미뤄온 결과였다.

그렇게 살면 관계는 유지된다. 문제는, 관계는 유지돼도 나 자신은 사라진다는 거다.


돌이켜보면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대신, 내 감정을 배신한 사람이었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상대의 눈빛에만 반응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이제는 너무 길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나에게만 이렇게 냉정했을까.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것도 있었지만, 가장 나를 몰아세운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다. 분위기 깨는 사람이 되더라도 내 기분을 먼저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의 눈치보다 내 마음의 신호를 먼저 알아차릴 줄 아는 사람.

그게 나를 지키는 첫걸음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다음 회에서는 '나에게 가장 가혹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참는 습관, 완벽주의, 그리고 내가 나를 벌주던 방식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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