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CEO가 깨달은 '계획대로 늙어가는' 법
"계획대로 늙어간다."
노홍철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 기사화된 걸 우연히 봤다.
짧은 문장이었는데,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다.
그는 화려한 청춘의 상징처럼 보였지만,
그 문장에는 '의도적 나이듦'이라는 깊은 평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곱씹으며 내 삶을 돌아봤다.
"나는 과연 계획대로 늙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버텨가고 있을 뿐인가?"
그 질문이 마음을 찔렀다.
나는 컨설팅 회사 대표다.
《너무 맞는 말이라 기분이 나쁘다》,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 《이제 역전되리라》 등
여러 권의 책을 쓰며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최근,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젊을 때의 삶은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결과를 향해 확장되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나이든 삶은 그 반대다.
덜어내고, 줄이고, 남기는 일.
나는 이제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다.
만나도 오래 앉아 있지 않는다.
대화의 방향이 내 삶의 리듬을 흔들 때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선택이다.
계획대로 늙어간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니라,
나에게로 돌아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너무 맞는 말이라 기분이 나쁘다》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모든 인연을 이어갈 필요는 없다는 단단한 철학."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젊을 땐 인간관계가 재산이라고 배웠다.
사람을 많이 알아야 일이 풀리고,
연락을 자주 해야 기회가 온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관계는 넓힐수록 풍요로워지는 게 아니라, 무거워진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관계의 무게는 정해져 있었다.
그걸 넘어서면 인맥은 자산이 아니라 짐이 된다.
그래서 나는 "관계의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억지로 끊은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멀어진 사람들을 다시 붙잡지 않았다.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의 말처럼,
"놓는다는 건 끝내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그 문장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자유로워졌다.
누군가를 잃는 게 아니라, 나를 되찾는 과정이었다.
《이제 역전되리라》를 쓸 때 나는 '역전'이란 단어를 붙잡고 있었다.
"반드시 더 잘돼서 보여주겠다."
그게 내 동력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건 누구를 위한 역전이었을까?
나는 지금, 정말 나를 살고 있는 걸까?"
그 질문 끝에서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행복이란, 언제나 비교를 전제로 한 감정이었다.
누군가보다 나은 삶, 이전보다 나은 나.
그 계산 속에서 마음은 늘 빚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꼭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꼭 행복하지 않아도 돼》라는 책을 쓴 이유도 거기 있다.
대신 이렇게 정리했다.
"평화로운 하루가 반복된다면,
그게 내 인생의 최고치다."
이제 나는 행복 대신 평온을 택한다.
행복은 순간의 감정이지만,
평온은 태도의 지속이다.
나는 더 이상 기쁘지 않아도 괜찮고,
슬퍼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저 내 안의 날씨를 예측 가능한 기후로 만드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제는 사람을 '선택적으로' 만난다.
일 때문에, 혹은 사회적 이유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최소화했다.
그 대신 진심으로 연결된 사람들과는 오래 함께한다.
이 시대는 '관계의 양'을 자랑하지만,
나는 '관계의 농도'를 지켜간다.
내가 선택한 만남에는 계산이 없고,
내가 거절한 인연에는 미안함이 없다.
그건 이기적인 태도가 아니라,
내 삶의 리듬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방식이다.
《그 인연은 그 시절까지였다》에서 썼듯이,
"끝이 있음을 아는 것의 가치."
모든 관계는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이 끝났다면, 관계도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 내 삶이 남는다.
계획대로 늙어간다는 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정돈되는 것이다.
내 방이, 내 시간표가, 내 마음이 정리되어 간다.
욕망의 여백이 생기고,
감정의 마찰이 줄어든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완성이다.
삶이란 결국 "무엇을 얻느냐"보다
"무엇을 버리느냐"의 싸움이었으니까.
나는 더 이상 젊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젊음은 속도를 자랑하고,
나이듦은 방향을 안다.
이제 나는 방향으로 산다.
나이듦은 내 생의 두 번째 설계다.
계획대로 늙어간다는 건
퇴직 후의 계획표나 경제적 준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삶의 편집권을 되찾는 일이다.
누가 내 일정을 정하지도,
누가 내 감정을 지배하지도 않게 만드는 것.
이제 나는 타인이 정한 행복 대신
내가 고른 평온으로 하루를 산다.
모든 인연은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이 지나면 조용히 놓는다.
그게 내가 정한 노년의 품격이다.
나는 이제 늙는 게 아니라,
다듬어지고 있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의 노년은 누가 설계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