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을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것들을 떠올려보면 불과 하루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모든 기억들이 단편적이다. 안 좋은 기억보단 좋았던 기억들이 더 많았고 안 좋은 기억들은 대부분 강렬했던 사건들이다. 크게 다쳤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거나 나 스스로에게 실망했거나 이런 것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좋은 기억들은 또 대부분 사람과 관련한 것들이다. 놀러 갔거나 칭찬을 받았거나 합격했거나 사랑에 관한 기억들이 그렇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기억들이 사실일까? 혹시 내가 그렇다고 믿고 싶은 것을 실제 행한 것으로 간직한 것은 없는 걸까? 또 잊고 싶어 심연 속으로 묻어버린 기억은 없는 걸까? 왜 우린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불과 며칠 전의 일까지도 말이다. 또 어떤 기억은 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
이왕 이럴 바에 기억하고 있는 것을 꺼내고 싶을 때 꺼낼 수 있고 기억하기 싫은 것은 기억하지 못하도록 자물쇠로 가둬버릴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세상이 지맘대로 돌아가겠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면 세상 모든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될 것이며 나쁜 짓을 해도 기억에서 지우면 그만이니.
인간은 어쩌면 불완전하기 때문에 제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것 같다. 좋은 추억을 간직하려 애쓰고,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며 반성 또는 발전할 거름으로 삼기도 하고. 또 어쩌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잘 살아가기 위해 그런 것 같다. 모든 기억이 쏟아져 들어오면 안 그래도 할 거 많은데 뇌가 과부하돼서 터져버릴지도 모르니까. 한 번씩 몰랐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도 나름 재밌으니 크게 고민하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