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제대로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특정한 거창한 방향성이 있어야만 옳은 삶일까요? 때로는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걸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무거운 질문들이 도리어 나를 단단히 옭아매는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지 않으면 마치 인생을 낭비하는 것 같은 묘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실 지금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더 잘 산다'는 기준은 또 무엇일까요? 온전히 나의 시선으로 스스로 만족해야 할까요, 아니면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내 모습이 그럴싸해야 할까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내 내면의 목소리보다 타인의 잣대를 더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해 봅니다. 어쩌면 평생을 좇아도 명확한 정답을 찾지 못할 이 질문을 끌어안고, 우리는 남은 평생을 무겁게 고민만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긴 고민 끝에 저는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질문의 초점을 삶의 '목적'이 아닌 '방향'으로 돌리자는 것입니다. 시선을 '목적'에 고정하면, 반드시 무언가를 달성하고 도달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생깁니다. 행여나 그 목적지에 닿지 못하면 스스로를 실패자나 패배자로 낙인찍게 되죠. 하지만 '방향'은 다릅니다. 내가 지금 내딛는 발걸음이 즐거운 길인지 수시로 가늠해 볼 수 있고, 걷다가 문득 "어, 이 길이 아닌가?" 싶으면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경로를 틀면 그만입니다.
원고를 끄적이는 지금, 저 자신에게 다시 질문을 던져봅니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나는 지금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라는 질문. 과연 어느 쪽이 지금의 저를 더 가슴 뛰고 행복하게 만들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웅장하게 완성될 '그림의 전체'를 지레 걱정하기보다, 지금 도화지 위에 즐겁게 찍어 누르는 '작은 붓 터치 하나'가 훨씬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붓질이 모여 완성된 그림이 애초의 상상과 조금 다르거나 삐뚤어졌다 한들 어떻습니까. 그 역시 내가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가슴 뛰게 그려낸,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온전한 내 인생이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제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