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다. 그동안의 노력과 결과에 대한 칭찬을 해야 하는데 부모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나온다. 00 이는 몇 점 받았니? 아이의 친구와 비교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00 이는 뭘 잘하는데 너는 할 줄 아는 게 왜 없니?"와 같이 늘 다른 아이와 비교당한다. 심지어 TV에 나오는 생판 모르는 아이를 보며 "저 아이 봐라 얼마나 착하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비교당하는 걸까? 순수 나로서 인정받을 순 없는 걸까? 비교는 사람에서 그치지 않는다. 통영의 바다는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린다. 우린 나폴리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른다. 나폴리를 다녀온 사람들이 그렇게 붙인 거다. 그런데 그들은 통영을 바라볼 때 통영의 아름다움을 볼까? 아니면 나폴리의 아름다움을 볼까? 후자일 것이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통영의 정체성은 사라진다. 그냥 나폴리의 바다 어디쯤과 비슷하다 정도로 인식하고 나폴리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질 것이다.
연예인 누구 닮았다는 말을 들은 이들은 그 연예인과 비슷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바라보는 이들도 연예인과 닮았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을 더 바라보게 된다. 나의 정체성은 그 연예인의 닮음꼴로 인해 사라진다. 오히려 아무도 닮지 않은 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더 드러낼 수 있다. 이렇게 우린 누군가 또는 무언가와 비교하며 그 사람 또는 장소의 고유한 정체성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다.
비교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는 행위는 올바르지 않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100 모두가 각기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비교하지 않아야 내 삶의 만족도 또한 올라간다. 온전히 나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비교할 거면 '이탈리아의 통영' '나 닮은 연예인' 나를 중심으로 이름을 갖다 붙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