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로 도로에서 트럭 한 대가 도로를 가득 채운 채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내 차량 뒤에 있던 버스가 중앙선을 시원하게 가르며 트럭을 추월하려 했다. 트럭 운전사는 기분이 나빴던지 버스가 추월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차로 버스를 가로막으려 했다. 반대 차선에서 갈길을 잃은 버스는 클락션을 울려댔고 두대의 차량은 동시에 멈춰 섰다. 트럭 운전사가 먼저 내렸고 버스 문이 열리며 버스 기사도 내렸다. 버스 기사가 잘못한 것이 맞기에 사과하려는 줄 알았는데 서로 삿대질하며 큰소리로 싸웠다.
사람들은 왜 자신이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가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만든 것만 따지려 들까? 심지어 버스 기사는 승객의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행동을 했는데도 말이다. 음주 운전을 한 사람이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었음에도 단속하는 경찰관을 향해 욕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한 것보단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을 더 참지 못하는 듯하다. 이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 때문에 타인의 잘못에 더 큰 비중을 둬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 드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한두 번 이어지면 모든 부분에서 타인의 잘못된 행위만 보이게 되고 자신은 늘 당당하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정도쯤은'이 저절로 맘속에 새겨지게 되는 거다. 이들은 나에게 '이 정도쯤'인 행위를 상대가 하게 되면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상대를 몰아붙이며 나의 떳떳함을 더 확고히 굳히려 한다. 이들은 자신은 늘 잘못한 것이 없으며 사고가 일어나도 원인을 찾기보단 누군가의 흠집을 찾기 바빠진다. 결국 그것이 언젠간 자신의 몰락을 가져올지 모른 채 허영에 젖어있는 것이다.
타인의 흠집만 찾는 이들은 스스로 흠이 많은 사람이다.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사과하는 것을 지는 것이라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들의 눈앞엔 투명한 막이 쳐져있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한 발이라도 더 나아가고 싶다면 내 과오를 인정하고 나를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늘 제자리에서 스스로를 왕으로 떠받들고 늘 누군가의 흠집이나 찾아내며 흐뭇해하는 바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