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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박사 Nov 29. 2024

166.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봐야

모든 현상 또는 사건에는 보이지 않는 이면이 있다. 단면만 보고 그 상황을 해석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고 그 오해는 계속 커져간다. 당사자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문득 드는 생각에 의문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상황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특히 누군가를 질투할 때는 더 위험하다. 질투는 눈과 귀를 가리고 내 생각을 조정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을 안 보면 그뿐이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고 소문을 만들어내고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인 것처럼 부풀려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대한 우화를 보면 모두 토끼는 게으르고 거북이는 우직하고 부지런해서 거북이가 이기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배웠다. 애초 둘 사이에 경쟁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공정한 경쟁에 대해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또한 토끼가 잘 때 거북이가 이를 그냥 지나친 것도 과연 올바른 일인가 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건 경쟁에서 꼼수를 부려도 된다는 이야기와 같다. 물론 세상에 공정한 출발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나까지 공정한 경쟁에서 꼼수를 부려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개미와 베짱이도 그렇다. 열심히 일만 하는 개미와 놀고 즐기는 베짱이 이야기는 그 이면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그럼 베짱이들은 겨울에 모두 굶어 죽거나 빌어먹고 살아야 한다. 우린 무언가를 말하거나 생각할 때 이런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건 무조건 잘못된 거야. 누구는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단정 짓는다면 그 사람과 상황의 배경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 그럼 개선될 여지 또한 없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정말 이것이 사실인 걸까?' 묻고 따져야 한다. 흔히 마녀사냥이라 불리는 사건들을 보면 나중에 진실이 아닌 경우도 밝혀진다. 그때 입에 거품을 물고 비난하던 이들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비난해야 할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진실로 밝혀질 때까지는 내가 사건을 더 확장시켜서는 안 된다. 그 화살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고 사실이 아님으로 밝혀지더라도 그 상처는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나 또한 죄책감이 들거나 그 죄책감을 가리기 위해 계속 정당함을 유지하기 위해 가면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나도 그런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 그러니 모든 현상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조심하고 이면을 들여다보려 노력해야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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