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등학생이 자살을 시도했다. 경찰관과 소방관이 현장에서 그를 제지하고 한동안 곁을 지키며 안정을 취하게 했다. 그 아이는 도박 중독에 빠져 있었고,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지고 있었다. 부모에게 연락을 취하자 돌아온 말은 차가웠다. “원래 그런 녀석이에요. 쇼하는 겁니다.”
청소년 일탈 신고 현장에서 흔히 마주하는 반응이다. 많은 부모는 모든 책임을 자녀에게 돌린다. 더 이상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듯, 마음대로 처리하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과연 이것을 자녀 개인의 일탈로만 볼 수 있을까. 아이들은 왜 중독에 빠지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떠올리게 될까. 그 배경에는 어릴 적부터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애정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애정이 부족하면 자존감은 낮아지고, 그 결핍을 다른 무언가로 채우려 하게 된다. 결국 그들의 행동은 “나를 봐달라”는 절박한 신호다.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해를 하거나, 일부러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아이들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일탈처럼 보일 뿐, 그 속에는 외로움과 공허함이 깊게 깔려 있다. 애정 결핍을 겪는 아이들은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물질이나 행동에 쉽게 빠진다. 술, 약물, 인터넷, 도박 같은 것들은 뇌의 보상 체계를 자극해 잠시나마 기분을 좋게 만든다. 사랑과 인정으로 채워지지 못한 보상 체계의 빈자리를, 중독이 대신 메우는 것이다.
이런 중독은 개인의 의지로만 벗어나기 어렵다. 가족과 사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본인의 일탈’이라며 손을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 어쩌면 부모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 두려워 외면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늦은 때란 없다. 지금이라도 자녀를 안아주고 다시 붙잡아야 한다. 몸집이 어른만 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어른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진짜 어른인 우리가 그들을 다시 제자리로 데려와야 한다.
모두가 힘든 세상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녀에 대한 책임만큼은 끝까지 져야 한다. 한 번 책임을 회피하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마저 회피하게 된다. 그 결과는 또 다른 결핍과 고통으로 돌아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