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어제, 그 집에서는 또 한 번의 사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아이는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했고, 옆에서 이야기를 들은 친구조차 “저 말이 맞는 것 같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하지만 화가 잔뜩 난 엄마에게 논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큰소리가 오갔고, 아이는 “왜 내가 혼나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반발했다. 그렇게 둘의 싸움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집은 한 달에 스무 날 이상을 이렇게 다툰다고 한다. 왜 이런 싸움이 반복되는 걸까. 아마도 우리 세대가 ‘어른에게는 이유 없이도 복종해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혼나도,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반면 지금의 아이들은 다르다. 혼나는 데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가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일부 부모가 자녀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을 ‘지는 것’으로 여긴다는 데 있다. 그래서 아이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큰소리부터 낸다. 아이가 논리적으로 따지는 그 자체가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싸움이 끝난 뒤에도 “미안해”라는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져 간다. 결국 그 책임은 아이가 ‘못돼 먹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고, 심지어는 아이를 포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동생은 자신 역시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놓았다. 막상 해보면 그리 어려운 말도 아닌데, 해보지도 않고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는 것이다. 아이들의 눈에는 어른들이 사과하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왜 자신들만 사과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간극은 어떻게 좁혀야 할까.
결국 변해야 하는 쪽은 부모다. 아이들은 말은 어른처럼 하지만, 여전히 부모의 보호와 그늘이 필요한 존재다. 그들 역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그렇게 대우받아 왔다고 해서,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대해선 안 된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리고 부모가 원하는 바를 차분히 말하면 된다. 아이들 역시 부모에게 반항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는 결국 부모에 대한 존중으로 되돌아온다. 아이가 변하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변하려 노력할 때 아이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