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정책이나 조직의 정책을 보면 종종 비슷한 장면을 마주한다. 어떤 이슈가 터지면 충분한 숙론 없이, 일단 무엇이든 던져놓고 보는 식이다. 당장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그 정책이 만들어낸 부작용을 고스란히 국민이나 조직원이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은 늘 비슷하다. “그건 현장에서 알아서 해결해야죠.” 정책을 만든 쪽은 한발 물러나 있고, 수습은 언제나 아래의 몫이다. 흡연구역을 떠올려보자. 취지는 분명하다. 비흡연자의 건강 보호, 공공장소의 쾌적한 환경. 하지만 흡연자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과 동선, 이용 빈도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 흡연부스는 턱없이 적고, 위치는 불편하다. 결과적으로 흡연자들은 길거리로 밀려나고, 비흡연자들은 원래 피하려던 담배 연기를 더 가까이서 마주하게 된다.
이웃나라 일본은 ‘분연권’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흡연을 장려해서가 아니라, 피울 사람은 정해진 공간에서 피우고 피우지 않을 사람은 확실히 보호하겠다는 선택이다. 권리를 통제하지 않고, 충돌을 줄이는 방식이다.
쓰레기통도 마찬가지다. 거리 미관을 이유로 쓰레기통을 없애자 거리는 오히려 더 지저분해졌다. 버릴 곳이 없으니, 버리지 말라는 말은 공허해진다. 결국 “시민의식이 문제다”라는 말로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구조는 손대지 않고, 태도만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도는 명령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환경이 먼저 바뀌어야 행동이 따라온다. 우리 사회는 정책을 너무 서두른다. ‘빨리빨리’ 문화와 책임 회피가 결합된 결과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었다는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분히 묻지 않고, 충분히 기다리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정책은 속도가 아니라 균형에서 나온다. 한쪽의 불편을 다른 쪽의 도덕으로 덮어서는 안 된다.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고려하고, 조금 늦더라도 합의의 과정을 거칠 때 정책은 비로소 사람을 돕는 도구가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규제가 아니라 더 많은 숙고와 인내다. 기다릴 줄 아는 사회, 서로의 불편을 함부로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 사회. 정책은 던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