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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내 방식대로 경찰을 보여주마!

by 오박사

신문이나 TV를 통한 홍보는 늘 정해진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형식을 벗어나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세상에 선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 홍보는 늘 선행 미담, 간담회, 행사 중심의 기사로 채워졌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달랐다. 정해진 형식도, “이런 걸 홍보하라”는 매뉴얼도 없었다. 담당자의 순수한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보물을 캐낼 수 있는, 말 그대로 블루오션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초창기 경찰서 페이스북 계정들의 게시물은 거의 똑같았다. “○○경찰서에서는 ○월 ○일 ○시경 ○○을 ○○하였다”는 식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올리고, 사진 한 장 덧붙이는 정도였다. 그런 형식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좋아요’ 수가 한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그런 방식이 싫었다. SNS라는 공간에서는 딱딱한 형식을 버리고, 보다 자유롭고 생생하게 경찰서를 알리고 싶었다. 다행히도, 홍보부서 계·과장님과 서장님은 SNS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즉,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식 계정의 이름과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찰관서 계정은 참수리 마크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경기도 부천오정경찰서는 ‘오정’이라는 이름에 착안해 오징어 캐릭터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도 우리 경찰서를 상징할 수 있는 이름과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올린 이름이 ‘미르’였다. ‘미르’는 밀양의 옛 이름이기도 하고, 순우리말로 ‘용’을 의미한다. 이왕이면 제대로 해보자 싶어,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친구에게 부탁해 경찰과 용을 결합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사람들은 ‘미르’를 금방 좋아했고, 덕분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제는 게시물 내용에 대해 고민할 차례였다.
‘어떤 게시물을 올려야 사람들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경찰에 대해 잘 몰라. 그럼 그냥 우리 모습을 편하게 보여주자.” 그래서 하루에 하나씩 꼭 게시물을 올린다는 원칙을 세우고, 경찰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사무실 풍경’, ‘신임 순경 발령’, ‘화단의 꽃’, ‘커피 타임’, ‘점심 메뉴’ 등, 경찰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반응은 좋았다. 방문자도 점점 늘어났다.


물론 매일 반응이 좋았던 건 아니다. 어떤 날은 ‘좋아요’ 수가 10개, 또 어떤 날은 100개를 넘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게시물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 SNS에도 나름의 ‘법칙’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시물 올리는 시간(출근 전이나 점심시간)’,
‘사람들의 피드 상단에 노출되게 하는 방법’,
‘스토리텔링’,
‘쉬운 언어로 풀어쓰기’,
‘댓글은 기본’ 등
반응이 좋은 게시물의 공통점을 정리해 나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나만의 홍보 매뉴얼, 이름하여 **‘밀양경찰서 홍보 방법’**이었다. 이 매뉴얼은 다른 경찰서 홍보 담당자들과도 공유했다. 그 결과, 밀양경찰서 페이스북은 평균 ‘좋아요’ 수가 200명을 넘기게 되었고, 경찰청 홍보팀의 관심도 받았다. 이후 홍보 담당자 교육을 맡아 내가 터득한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최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유명한 부산경찰 페이스북이 등장했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얻는 그 페이지를 보며, 솔직히 허탈함을 느꼈다. 내가 이뤘어야 할 성과를 빼앗긴 듯한 기분이었다. 질투는 아니었다. 다만, 나와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그리고 나의 한계를 마주했을 뿐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때 내가 느꼈던 홍보에 대한 열정, 그리고 나를 응원해주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은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이후로는 내 개인 SNS 활동에 더 집중했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또 다른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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