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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독도는 우리땅, 그날 우리는 춤췄다

by 오박사

페이스북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경찰, 변호사, 아나운서, 군인 등 직업도 제각각이었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사람은 2012년 당시 경기북부경찰청의 홍보담당자로 일하던 친구였다. 그는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영상 촬영과 편집까지 해낸 홍보 영상을 페이스북에 여러 편 올렸다. 영상은 참신했고, 편집도 수준급이었다. 같은 홍보 담당자로서 그의 능력이 부러웠고, 자연스레 더 알고 싶어졌다. 친구 신청을 보냈고, 그는 바로 수락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의 페이스북 담벼락을 자주 들락거렸다.


하지만 그는 다소 직설적이고 전투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다. 마치 ‘쌈닭’ 같은 기질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살짝 부담을 느끼며, '쉽게 친해지기는 어렵겠구나' 생각하던 중, 그가 한 게시물을 올렸다. '독도 플래시몹 참가자 모집' 공지였다.


2010년을 전후로 일본의 독도 도발이 심해지자, 많은 국민이 분노했고, ‘독도는 우리 땅’임을 알리는 다양한 시민 운동이 일어났다. 플래시몹도 그중 하나였다. 플래시몹은 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일정한 행동을 한 후, 순식간에 흩어지는 퍼포먼스다.


그는 경찰관과 시민이 함께하는 독도 플래시몹을 기획했다. 그 안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우리도, 경찰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너는 저기 가야 해.’

속에서 또 다른 내가 외쳤다. 행사 장소가 경기도 안양이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토록 가슴이 뛰었던 순간이 또 있었던가? 망설임 없이 댓글을 달아 참여 의사를 밝혔다.


행사 날짜는 6월 6일, 현충일로 정해졌다. 서울·경기권 참가자들은 미리 모여 연습을 했고, 타 지역 참가자들은 영상을 통해 따로 연습하기로 했다. 동작은 어렵지 않아 몇 번만 연습하면 충분했다. 나는 집과 사무실을 오가며 틈틈이 연습했고, 사무실 동료들도 나를 응원해줬다.


당일 오후 2시, 안양 범계동의 한 펍에서 모이기로 했다. 최종 리허설을 한 뒤, 오후 5시에 범계역 광장에서 플래시몹을 펼칠 계획이었다. 서울역까지 KTX로 약 2시간 50분, 다시 지하철을 타고 40분 만에 범계역에 도착했다. 광장을 지나 5분쯤 걸어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공휴일이라 그런지 범계역 광장은 인파로 북적였다.

‘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춘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이 뛰었다.


모임 장소는 주최자의 지인이 운영하는 펍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두운 조명 아래, 이미 몇몇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사실 플래시몹만큼이나 나를 설레게 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페이스북 친구였고, 실제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들을 만났다. 휴대폰 화면에서 보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소개하지 않아도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우리는 처음 만났음에도 오랜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행사를 주최한 그 친구와도 인사를 나눴다. 직접 만나보니,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나도 모르게 그에 대한 편견을 품고 있었음을 느꼈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두 모이자 우리는 연습을 시작했다. 펍은 공연도 하는 곳이었는지 춤을 출 공간이 충분했다. 각자 준비해온 옷을 갈아입고 정해진 자리에 섰다. 나는 근무복을 입었고, 다른 경찰관들도 정복, 기동복, 교통복 등 다양한 복장을 갖춰 입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시선을 끌 만한 장면이었다. 연습은 순조로웠고, 두세 번의 리허설만으로도 준비는 끝났다.


시간이 되자 우리는 두세 명씩 짝을 맞춰 광장으로 향했다. 경찰 복장을 한 사람들이 하나둘 등장하자 시민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마치 경찰 코스프레 행진이라도 보는 듯했다. 심지어 신고를 받은 관할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하는 소동도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음악이 나오길 기다렸다. 아직 아무도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던 순간, ‘독도는 우리 땅’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약속된 타이밍에 맞춰 광장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함께하기로 한 학생들도 교복을 입은 채 광장으로 나왔다.


그제야 사람들은 이 퍼포먼스가 플래시몹이라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환호성을 질렀고, 우리는 음악에 맞춰 힘차게 춤을 췄다.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고, 박수를 보냈다. 경찰과 시민이 함께한 그 장면은 그 자체로 큰 울림이었다. 음악이 멈추고, 우리도 멈췄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고, 우리는 서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고, 감동을 맛보았다. 그날 이후, 한 번 뜨거워진 가슴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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