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던 첫 강의 의뢰가 드디어 들어왔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둔 자료도 있었기에, PPT만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문제가 생겼다. 바로 그 PPT였다. 한 번도 강의자료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가고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결국 인터넷을 뒤지고, 강의 기법 관련 책도 몇 권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맡은 주제가 'SNS 홍보 방법'이라, 설명보다는 이미지 위주의 구성으로도 충분했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자료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시간 안배였다. 40분짜리 강의를 준비해야 했지만, 그게 실제로 얼마나 분량이 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만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일단 부딪쳐보자는 마음으로 슬라이드 20장을 만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강의는 단순히 의뢰를 받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지, 무엇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시간은 어떻게 배분할지 등 생각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두 주가 훌쩍 지나고 드디어 강의 날이 되었다. 그날은 경남청 홍보 담당자 워크숍이 있는 날이었고, 나도 참석자 중 한 명이었다. 8시간짜리 워크숍 중 한 시간이 내 강의로 배정되어 있었다. 정장을 차려입고 행사장에 도착했더니, 주변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다른 경찰서 담당자들은 모두 편한 복장이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유독 격식을 차린 모습이 낯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첫 시간부터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있다는 것만 느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속도는 더 빨라졌고, 손과 등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앞에 나가 조용히 USB를 꽂고 자료를 띄웠다. 몇몇 참석자가 내 모습을 지켜봤다. ‘저 사람이 뭐지?’ 하는 표정들이 느껴졌다. 그들의 시선에 심장은 더욱 거세게 뛰었다. 이게 긴장인지 설렘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다만, 온몸을 타고 오르는 묘한 흥분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11시 정각, 모두 자리에 앉고 나를 바라봤다. 또 한 번 짜릿한 전율이 몰려왔다. 손발은 떨렸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다행히 한 번 터진 말문은 막히지 않았다. 준비한 내용을 차근차근 풀어나가며 40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시간의 흐름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저 “준비한 걸 다 보여주자”는 마음뿐이었다.
생각보다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몇몇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고, 그 모습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점점 더 몰입했다. 말 그대로 날개를 단 듯, 강의는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물론 이건 내 기준이다. 강의가 끝나고 인사를 하자, 참석자들이 박수를 쳤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짜릿했다. 40분 동안 말했지만, 너무 아쉬웠다. 더 이야기하고 싶었고, 이 자리에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다.
피드백도 괜찮았다. “처음 한 강의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라는 말을 들었다.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단 한 번의 강의였지만,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마치 마약처럼, 강의 후유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 갈증을 어떻게 다시 해소할 수 있을까. 나는 그 해답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