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뻔한 설교를 멈추자 아이들의 마음이 열렸다

by 오종민

나에게 페이스북은 단순한 소셜 미디어를 넘어선 '은인'이자 기회의 땅이다. 수많은 사람과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연결되었고, 때로는 강의를 향한 나의 무모한 열정을 알리는 최고의 1인 방송국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이 연결망을 통해 아주 특별하고 이례적인 초대장이 날아왔다.


발신자는 페이스북으로 꾸준히 인사를 나누던 한 여성이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인 그녀는, 오랫동안 내 SNS를 지켜보며 나름의 신뢰를 쌓아왔던 모양이다. 그녀는 대뜸 자기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와서 '학교폭력 예방 강의'를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사실 학교폭력 강의는 관할 경찰서의 전담 경찰관이 맡는 것이 불문율이다. 학교와 아무 연고도 없는 타 지역 경찰관을 부른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뻔한 제복 경찰관이 아닌, '나'라는 사람의 입을 통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꼭 전하고 싶다는 간절한 기대가 배어 있었다.


경찰서 홍보 담당 시절, 나는 수많은 서장님을 모시고 학교 강당을 다녔다. 카메라 앵글 뒤에서 지켜본 현장의 공기는 늘 차갑고 무거웠다. 단상 위에서 쏟아지는 옳은 말들과, 단상 아래서 영혼 없이 앉아 있는 아이들 사이에는 거대한 유리벽이 존재했다. 아이들에게 경찰의 제복은 첫 5분만 신기할 뿐, 이내 초등학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지루한 설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나는 렌즈 너머로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을 보며 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내가 저 단상에 선다면, 나는 저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진짜 폭력을 멈추게 하려면 어떤 말을 던져야 할까?’


마침내 그 고민을 실험해 볼 무대가 주어졌다. 강의를 준비하며 내가 세운 목표는 단 두 가지였다. 첫째, 어떻게 아이들의 시선을 단상으로 끌어올릴 것인가. 둘째,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진짜로 흔들 것인가.


첫 번째 과제는 쉽게 풀렸다. 강당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에게 '나는 너희를 조사하고 왔다'는 시그널을 주었다. 해당 학교의 특징을 녹여낸 맞춤형 퀴즈를 던지고, 정답자에게 젤리를 듬뿍 안겨주었다. 굳어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풀리며 강당의 온도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진짜 승부는 두 번째 과제였다. 기존의 강의는 "학교폭력은 나쁩니다. 피해 친구가 얼마나 아프겠어요?"라며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해 주기를 호소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가해 성향을 가진 아이들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다. 오히려 "그냥 장난이었어요"라며 자신의 폭력을 합리화하기 바쁘다.


나는 과감히 프레임을 뒤집었다. 피해자 중심에서 **'가해자 중심'**으로 렌즈를 돌린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이기적인 본성, 즉 '내 손해'에는 기가 막히게 민감하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네가 누군가를 괴롭혔을 때, 그 꼬리표가 군대에 가서 너를 어떻게 옥죌까? 훗날 사회에 나갔을 때, 네가 괴롭혔던 그 아이가 너의 직장 상사로 앉아있다면 네 인생은 어떻게 될까?" 철저히 가해자가 치러야 할 '현실적인 대가와 파국'을 생생하게 그려주자, 웅성거리던 아이들의 눈빛이 순간 매섭게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흐름을 탄 나는 화면에 사진 두 장을 띄웠다. 첫 번째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외국 난민 아동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보니 어때?"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불쌍해요, 안타까워요"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두 번째 사진을 띄웠다. 학교폭력으로 온몸에 멍이 들고 웅크린 채 고통받는 또래 아이의 사진이었다. 강당 여기저기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침묵을 뚫고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전혀 모르는 아이의 사진에는 그토록 아파하면서, 왜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누고 밥을 같이 먹는 내 옆자리의 친구가 죽어가는 것에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까?" 아이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앵무새처럼 떠들던 법 조항 백 마디보다, 단 두 장의 사진이 던진 파장이 훨씬 컸다.


강의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무기는 세 개의 숫자였다. 화면에 **[75 : 5100 : 300]**을 띄우고 무슨 의미인지 퀴즈를 냈다. 정적이 흐르고 1분 남짓 지났을까,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들고 정답을 맞혔다. "세계 인구 75억 명, 대한민국 인구 5,100만 명, 그리고 우리 학교 전교생 300명!"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이크를 잡았다. "맞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왼쪽, 오른쪽에 앉아있는 친구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눈을 맞추는 건, 대한민국 인구 중 무려 17만 분의 1이라는 기적 같은 확률을 뚫고 만난 엄청난 인연입니다. 그 귀하고 경이로운 인연을, 고작 폭력 따위로 상처 내고 찢어버리지 마십시오."


강의가 끝났다. 강당 밖으로 나와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이 나를 향해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때, 한 남학생이 다가와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경찰 아저씨, 제가 지금까지 들었던 학교폭력 강의 중에 진짜 최고였어요. 감사합니다." 그 순간, 코끝이 찡해지며 심장이 뜨겁게 뛰었다.


나를 초대해 준 학부모 페친은 "강사님을 부른 건 신의 한 수였다"며 내 두 손을 꼭 잡고 고마워했다. 하지만 진짜 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였다. 틀에 박힌 제복을 벗고 온전히 '나만의 언어'로 누군가의 마음을 울렸던 그날의 벅찬 감각. 나는 이 지독하게 매력적인 '강의'라는 무대를 평생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고, 다시 한번 뼛속 깊이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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