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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17만분의 1의 인연에게 전하는 이야기

by 오박사

페이스북은 나의 은인이다.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독도 플래시몹’처럼 가슴 뛰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또 강의를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무모하게 뛰어들어, 스스로를 홍보하며 강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특히 페이스북은 나의 강의 인생에 큰 도움을 주었다. 예전에 진주시 SNS서포터즈를 대상으로 한 홍보 강의도 그랬고, 이번에도 또 다른 강의 기회를 페이스북 친구를 통해 얻게 되었다.


페친 중 한 여성은 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였다. 그녀는 그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나를 지켜봐왔고, 좋게 봐줬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연락해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학교폭력 예방 강의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사실 이런 강의는 보통 관할 경찰서에서 담당한다. 나처럼 그 학교와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이 강의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에게 뭔가를 기대했던 것 같다.


홍보 담당이었던 나는 그동안 많은 서장님들을 모시고 학교폭력예방 강의를 촬영해왔다. 그때마다 아쉬움이 컸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학생들 사이에 벽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애초에 들을 생각조차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몇 년째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들어야 하니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처음엔 경찰 제복이 신기해 관심을 갖지만, 그 뒤로는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나는 늘 고민했다. ‘나라면 저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무엇이 저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정말 학교폭력을 예방하려면 무엇을 전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 그녀의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강의를 준비하며 두 가지를 고민했다. 첫째, 어떻게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인가. 둘째,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인가.


첫 번째 고민은 금방 답이 나왔다. 적절한 퀴즈와 선물을 활용하면 주목을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퀴즈는 아이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관심이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그 학교와 관련된 내용으로 준비했다. 선물은 젤리를 준비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큰 반응이 있었다.

두 번째 고민이 더 어려웠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예방 강의는 ‘학교폭력이란 무엇인가’, ‘폭력의 유형’, ‘처벌 내용’, ‘신고 방법’ 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 내용은 이미 아이들이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같은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왔다. 나는 그런 방식이 싫었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보기로 했다. 바로 피해자 중심에서 가해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강의는 피해자의 고통을 알리고 공감을 이끌어내려 한다. 하지만, 가해자 입장에선 피해자의 고통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장난이었다", "친해서 그랬다"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네가 가해자가 되었을 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예를 들어, 가해 경력이 군대에서 알려져 괴롭힘을 당하거나, 사회에 나가 피해자가 자신의 상사가 되어버리는 경우 등 현실적인 사례를 제시했다. 그들은 자기 손해에는 민감하다는 점에 착안한 전략이었다. 이런 방식은 의외로 학생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 하나 효과적이었던 건 두 장의 사진이었다. 첫 번째는 외국 난민 아동의 사진. 그 사진을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느낌을 물었다. 모두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불쌍하다”고 대답했다. 그 다음,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 아이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제서야 그들은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깨달은 듯했다. "전혀 모르는 아이에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왜 곁에 있는 친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니?" 이것이 그날 내가 전하고자 했던 주제였다.


그리고 마지막엔 세 개의 숫자를 제시하며 퀴즈를 냈다. 75 : 5100 : 300 모두 고민에 빠졌다. 1분쯤 지나 한 학생이 정답을 맞췄다. 정말 놀라웠다. 이 숫자는 각각 세계 인구 75억, 대한민국 인구 5,100만, 해당 학교 전교생 300명을 의미한다. 즉,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은 대한민국 인구의 17만 분의 1이라는 희귀한 확률로 만난 인연"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귀한 인연을 폭력으로 상처 주지 말고, 서로 소중히 여기자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강의가 끝난 뒤, 강당 밖에서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학생들이 나오며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한 학생이 다가와 말했다. “그동안 들은 학교폭력예방 강의 중 최고였어요. 감사합니다.” 그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나를 초청한 그 여성 페친도 함께 강의를 들었고, “정말 잘 초청했다”며 오히려 나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정작 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였다. 그녀 덕분에 너무나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날 또 한 번 ‘강의의 매력’에 빠졌다. 나는 강의 덕분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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