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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금의환향처럼, 후배들 앞에 서다.

by 오박사

2015년 초, 페이스북에서 한 경찰관 친구가 중앙경찰학교에서 후배들에게 강의하고 온 소식을 보았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부러움과 함께 오랜 기억이 떠올랐다. 2003년에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찾아가 본 적은 없었지만, 6개월간의 교육은 여전히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했고, 무엇보다 나도 강의를 하고 있었기에 혹시 나 또한 그 자리에 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떻게 강의할 수 있었냐고 묻자, 그는 중앙경찰학교 교수의 추천 덕분이었다고 답했다. 놀랍게도 그 교수는 나도 아는 분이었다. 순간 ‘어쩌면 나도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경찰 내부 메신저로 교수님께 조심스럽게 대화 요청을 드렸다. 다행히 흔쾌히 받아주셨고, 내가 특강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선뜻 허락해주셨다. 긴장했던 내가 오히려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쉽게 일이 풀렸다.


대화를 마친 뒤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졸업 후 12년 만에 후배들 앞에서 강의한다니, 마치 성공한 사람이 금의환향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를 교수로서 다시 방문한다는 사실이 설렘과 묘한 감정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강의 당일, 오전 10시에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부산에서 새벽 5시 반에 출발했다. 전날 잠을 설쳤지만 긴장감 덕분인지 피곤하지 않았다. 3시간 반을 달려 충주에 들어서자 고향에 돌아온 듯 반가웠다. 중앙경찰학교 정문에 다다르자 옛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정문 앞 슈퍼도 그대로였다. 오르막길을 차로 오르며 그 길마저 정겨워 잠시 차를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입교할 때, 외출이나 외박을 나갈 때 수없이 지나던 길이었다.


본관 2층 교무계에 들어서자 긴장이 밀려왔다. 학생 시절 공포의 장소였던 그곳에 이제는 교수로 들어간다니 기분이 묘했다. 담당 직원의 표정은 다소 떨떠름했는데, 아마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강사를 초청하는 것이 걱정스러웠던 것 같다. 나 역시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실력으로 증명하자’는 다짐을 하며 강의동으로 향했다.


강의실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은 우리를 볼 때마다 “충성”을 외치며 경례했다. 그 모습이 흐뭇해 나도 미소 지으며 답례했다. 강의실에는 이미 50여 명의 후배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시간이 다가오자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들어왔다. 긴장이 되었지만 애써 웃음을 지었다. 학생장이 나를 소개하려 하자, 내가 직접 하겠다고 말하며 몇 기 선배인지를 밝히자 후배들이 환호했다. 그 순간 울컥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감사 인사를 전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강의는 기대 이상으로 순조로웠다. 후배들의 반응이 좋아 나 또한 평소보다 매끄럽게 강의를 이어갈 수 있었다.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마지막 인사를 마친 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너무 행복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할 만큼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긴장이 풀리자 곧 피로가 몰려왔다.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졸음쉼터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그대로 깊이 잠들기도 했다.


후배들의 평가가 좋았는지 한 달 뒤 또다시 강의 의뢰가 들어왔고, 그 후로도 몇 차례 중앙경찰학교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이후로는 더 이상 기회가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다시 중앙경찰학교 후배들 앞에 설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보다 더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른 설렘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반드시 다시 그 자리에 설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함께, 그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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