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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꿈의 강단, 경찰인재개발원 첫 강의

by 오박사

인원이 많은 조직 대부분은 자체 교육기관을 운영한다. 경찰 역시 충남 아산에 경찰인재개발원(구, 경찰교육원)을 두고 있으며, 이곳은 연간 2만 명을 교육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자랑한다. 각 지방청에도 교육시설이 있지만, 교수진의 전문성과 수준 면에서는 경찰인재개발원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래서 경찰인재개발원은 강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서보고 싶은 꿈의 강단이기도 하다.


중앙경찰학교 특강은 주로 인맥을 통한 추천으로 이뤄지지만, 경찰인재개발원은 아무리 인맥이 있어도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강단에 설 수 없다. 그런 기회가 나에게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2013년, 당시 대전지방경찰청장이었던 정용선 치안감님이 경찰교육원장으로 취임해 2014년까지 재임했는데, 그는 SNS를 활발히 활용하며 경찰 이미지 개선에 큰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2014년 10월경 SNS 관련 과목 개설을 지시했고, 외부 강사 인력풀을 모집했다. 마침 SNS 경찰홍보 강의를 하고 있던 나는 이 공고를 보자마자 ‘이게 웬 행운인가’ 싶었다. 선발될 확신은 없었지만, 꿈의 강단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전국에서 8명의 SNS 강사가 뽑혔고, 그 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그 순간의 벅찬 감정은 쉽게 표현하기 어려웠다.


경남에서 근무하며 지역 경찰만 만나던 내가 전국의 경찰관을 교육하게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고, 늘 교육생으로만 다녀왔던 경찰교육원에 교수가 되어 올라간다는 생각에 설렘이 더해졌다. 인력풀에 등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의 일정이 잡혔다. 경장에서 경사, 경사에서 경위로 진급할 때 받는 일주일짜리 기본교육 과정 중, 내게는 2시간이 배정되었다.


부산에서 아산까지 차로 3시간 30분. 새벽부터 길을 나섰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의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평소보다 에너지가 두 배는 넘쳤다. 운전 내내 머릿속은 강의 구상과 수강생들의 반응으로 가득했고, 길마저 지루하지 않았다. 강의장에 도착하니 긴장감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그들과의 첫 만남은 첫 데이트처럼 두근거렸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쉬는 시간이라 스마트폰을 보는 이, 엎드려 자는 이,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누는 이들이 보였다. 빈자리도 군데군데 보였지만 몇몇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고, 나도 작게 “안녕하십니까”라 인사하며 목례했다. 자료를 정리한 뒤 잠시 호흡을 고르며 강의실 풍경을 둘러봤다. 수업 종이 울리고 모두 자리에 앉자 앞으로 나섰다. 학생장이 내 소개를 하려 했지만, 내가 직접 하겠다고 했다. 소개부터가 강의의 시작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SNS라는 주제는 사진이 많고 생소해서인지 수강생들의 눈빛은 집중되어 있었다. 분위기에 힘입어 목소리에도 더 힘이 실렸고 강의는 매끄럽게 이어졌다. 실습을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라고 하자, 수업 중 휴대폰을 쓴다는 것에 놀라는 모습도 보였다. 페이스북 가입을 시도하게 했는데, 가장 먼저 나에게 친구 신청을 한 두 명에게는 커피 기프티콘을 선물했다. 그 작은 이벤트에 강의장은 한층 더 활기가 넘쳤다.


첫 강의는 순식간에 지나갔고, 두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수강생들이 나를 “교수님”이라 부를 때는 마치 진짜 교수가 된 듯 묘한 기분이 들었고, 괜스레 어깨가 으쓱했다. 호칭 하나가 이렇게 사람을 달라지게 만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후 10월부터 12월까지 두 달간 지속적으로 출강했지만, 아쉽게도 2014년 말 경사·경위 기본교육 과정이 폐지되면서 내 과목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경찰인재개발원 외래교수로 활동했던 경험은 여전히 내 이력서에 자랑스럽게 적을 만한 가치가 있다. 언젠가 다시 강단에 설 기회가 온다면 꼭 다시 잡고 싶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꿈을 품고 묵묵히 나아간다면, 또 다른 기회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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