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설이고 추석이고 간에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제사를 지내기는 하지만 그냥 연휴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아이들에게도 명절은 게임 실컷 할 수 있는 날, 돈 받는 날, 늦잠 실컷 자는 날, 맛있는 것 많이 먹는 날 정도로 느껴질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명절에 대한 추억이 없다. 그것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의 어릴 적 명절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해준다. 아이들은 신기해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며 ‘왜 자신들에겐 그런 시골이 없냐고 묻는다.’
오늘도 문득 내 어릴 적 명절 추억이 떠올라 글로 옮겨본다. 아버지 고향은 경북 구미시 선산이라는 곳이다. 당시엔 차가 없어서 늘 기차를 타고 가야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명절 기차표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아버지, 어머니, 나, 남동생 넷이서 무거운 짐을 나눠들고 기차에 올라 1시간 40분을 서서 가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의 지하철마냥 사람 사이에 꽉 끼어 찍소리도 못한 채 그 시간을 버텨야 했다. 스마트폰도 없는 그 시간은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지 상상만 해도 답답해진다.
기차에서 내리면 또 다시 버스를 타고 30분을 더 가야한다. 고향 가는 여정은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선산 터미널이 보이는 순간부터 흥분이 되살아난다. 머릿속에선 명절 때 할 거리들이 떠오르고 누가 얼마를 주실 지가 궁금해진다. 터미널에서 큰아버지 댁까지 걸어가는데 가는 길에 선산시장이 있다. 4, 9일이 장날인데 우리가 도착하는 날이 장날이면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선산에 도착하게 되면 동생과 내가 들르는 코스는 항상 똑같았다. 큰아버지 댁에서 큰어머니께 큰 절을 올린 후 우리는 바로 목욕탕으로 향했다. 친 할머니께서 목욕탕을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에 인사드리러 가는 것이다. 목욕탕도 우리에겐 재미있는 곳이었지만 그곳을 향하는 우리의 마음은 부산을 떠날 때부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고모집이다. 고모 집은 당시 보기 힘든 2층 주택이었다. 집 내부에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어서 그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고모 집엔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피아노, 비디오, 다락방 등 우리가 놀 것들이 많았다.
목욕탕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 중 하나다. 할머니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실 때 동생과 내가 목욕탕 카운터를 맡곤 했다. 손님들에게 돈을 받고 안내를 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때밀이 타울 등을 판매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가장 쏠쏠한 재미는 할머니 몰래 빼돌리는 몇 천원이었다. 아마 할머니도 그 사실을 아셨을 것이다. 우리는 빼돌린 몇 천원을 들고 15분 정도를 걸어서 선산초등학교 앞 문방구로 향했다. 그곳은 우리가 늘 들리는 코스 중의 하나로 총과 콩알탄을 사고 종이 뽑기를 했다. 큰 아버지 댁은 숨을 곳이 많아서 총싸움하기 딱 좋기 때문에 총은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유희거리였다.
다시 목욕탕 이야기로 돌아가서 목욕탕은 밤에 놀 수 있는 우리만의 놀이터였다. 손님이 끊기고 나면 엄마는 목욕탕 청소를 해야 했다. 손님이 없는 탕은 우리에겐 최고의 놀이터였다. 탕 안에서 떠들어도 되고 물속을 제 맘대로 휘저어도 되기 때문이다. 명절 때의 마지막 추억은 고스톱이다. 명절 전날 어른들이 모이면 늘 고스톱을 쳤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엄마 옆에 딱 붙어 응원하면서 콩고물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나도 꼭 커서 명절이 되면 고스톱을 칠거야’라고 생각했다. 결국 현실이 되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것 말고도 명절에 대한 추억은 정말 많다. 아직도 목욕탕의 향이 느껴지는 듯하고 고모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추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그래서 더 안타깝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절에 대한 개념은 더욱 희미해져 갈 것이다. 옛 것이 추억으로라도 남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