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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소년기를 삭제한 오징어게임

by 오박사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넷플릭스 티브이(TV) 쇼 부문 1위에 올랐다. '오징어 게임'은 1980년대 아이들의 놀이였다. 바닥에 오징어 모양의 그림을 그리고 두 팀을 나눠 공격과 수비를 한다. 공격이 수비를 뚫고 오징어 머리를 차지하면 이기는 단순한 방식이다. 머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다 보면 다치기도 하지만 우린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국민학교 4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오징어 게임'을 할 때였다. 우리 팀이 공격을 맡았다. 수비를 피해 오징어 목 부분을 통과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상대편이 한눈을 파는 사이 이때다 싶어 목 부분을 재빨리 달려 나갔다. 하필 그때 수비 하나가 나를 발견하고 나의 손목을 낚아챘다. 피하려고 했지만 그에게 팔을 잡혔고 나는 아웃될 위기에 처했다. 죽으려는 찰나 반대편에 있던 우리 편 친구가 나를 살리기 위해 반대쪽 팔을 잡아당겼다. 양팔을 잡힌 채 균형을 잃었고 나는 앞으로 쓰러졌다. 쓰러질 때까지 그들은 내 손을 놓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땅에 얼굴을 박아버렸다. 운동장에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너무 아팠지만 얼굴에 피가 나는 것 같아 놀라서 일어났다. 코와 입에서 피가 많이 흘렀고 처음 당해본 상황에 무서워서 아픈 것을 잊었다. 울면서 집으로 향했고 나를 본 어머니도 깜짝 놀라며 피를 닦아주곤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의사 선생님의 말에 깜짝 놀랐다. 윗 이빨 정가운데 하나가 반쪽이 부러진 것이다. 지금 이빨을 찾아오면 붙일 수 있다고 해서 어머니와 함께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아무리 찾아도 이빨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일이 내 사춘기를 날려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치료 후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 가짜 이빨을 넣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성인이 될 때 이빨이 벌어져서 다시 교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빨이 다 자랄 때까지 이빨 없이 지내야 합니다." 그땐 어린 마음에 이빨 반쪽쯤 없는 게 뭔 큰일인가 싶었다.


중학교 진학 후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들 앞에서 말할 때마다 놀림을 받았다. 개그맨들이 가끔 이빨에 김을 붙이고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할 때마다 내 이빨이 딱 그렇게 보였다. 당시 영구라는 캐릭터가 있었는데 내가 딱 그 짝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입을 닫고 살았다. 친구들을 피해 다녔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소풍, 학교 축제 등을 모두 즐길 때도 나는 외톨이였다. 학교 마치면 늘 집으로 향했고 집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고등학교 진학해서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친구도 없었고 좋아하는 것도 없이 늘 우울한 얼굴을 한 채 집과 학교만을 오갔다. 얼마나 집돌이였으면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혼자 버스도 탈 줄 몰랐다. 학교에서 단체 영화관람을 한 적 있는데 길이라도 잃을까 싶어 친구들 뒤만 졸졸 따라다닌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은 부끄러운 과거지만 그땐 길을 잃어버릴까 무서웠다. 그 정도로 세상밖으로 나다니지 않고 철저히 은둔 생활을 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고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았다. 공부, 운동, 게임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사춘기를 느낄 새도 없이 중, 고등학교 시절을 학교와 집에서만 보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이빨을 해 넣었고 그때부터 아주 조금씩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세상은 참 넓었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새로운 세상이 좋았다. 사춘기를 잃었지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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