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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Dec 01. 2016

사랑을 해도 가끔은 외롭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이 옅어지면 외로움이 되는 거야.

나오코: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존재하고 이렇게 네 곁에 있었다는 걸 언제까지나 기억해줄래?     

와타나베: 언제까지나 기억할 거야. 내가 어떻게 너를 잊을 수 있겠어.     


그녀가 왜 나에게 “나를 잊지 마”라고 말했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물론 나오코도 알았다. 내 속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리라는 것을. 그랬기에 그녀는 나에게 호소해야만 했다.

“나를 언제까지나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줘.”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에서                





“미안해!”


고독해서, 외롭지 않으려고 사랑을 했는데 남자는 무심하다. 연락이 없다. 오랜만에 만난 남자의 한마디, 미안해-.      


사랑하는데 우리는 왜 외로운 것인가?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몰라도 그만은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한다면 그도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여긴다.      


“왜 미안한데…?”

“그래,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남자는 미안하다고 말하면 끝인 줄 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다. 왜 미안한지도 모르면서 건성으로 그런 거지? 여자는 더 화가 난다. 남자는 사과를 했는데 여자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른다. 여자는 자신을 혼자 내버려두고 연락도 안 한 그 무심함에 대해, 그 이유에 대해, 자기를 방치하고도 편히 있을 수 있었던 그 심리에 대해 묻고 있지만, 남자는 미안해 한마디로 넘어가려고 한다. 그 둔감함에 화가 나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그런 심리를 모른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서도 여자는 문득 공허함과 고독감을 심하게 느낀다.

     

여자친구가 말한다.

“날씨 탓인가. 요즘은 더 외로워!”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거야?”

“너는 외롭지 않잖아, 남자가 있잖아?”

“… 그래도 외로운 거야!”

“……”     


외롭지 않으려고 남자를 만난다면 너는 평생 외로울 거야. 하지만 입속에 맴도는 그 말은 하지 못한다. 나는 외롭지 않으려고 남자를 만난게 아니야. 좋아해서 만난 거야. 좋아해서 남자를 만나도, 외로운 건 외로운 거야.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자 숙명이지. 외로움이 깊어지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이 옅어지면 외로움이 되는 거야.        


사랑도, 혁명도,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테르미도르의 반동’과 같아. 외로움과 그리움을 오가는 것이지. 충만과 공허를 오가는 거야.  사랑은 본래 그런 것이야. 쓰면서도 달고, 채워지면서도 허전하지.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안다. 높은 산을 원한다면 깊은 계곡과 긴 그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의 반대편에 있는 그늘, 어쩔 수 없이 고이는 고독과 외로움까지 사랑했기에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을.

     

불길 같은 사랑을 쏟아붓다 가도, 그 열정의 날들을 그리워해도, 우리는 지나간 사랑의 공허함과 쓸쓸함에 문득 고독해진다.  그러면 어느 날 사랑은 출렁거리기를 멈추고 고요한 평화의 바다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지.     


그래도 어차피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름의 고독한 존재라면,  우리는 사랑하여 외로운 것이 그저 홀로 외롭기만 한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비록 후회의 독배를 스스로 마신다해도.


                                                      





추신:


대문과 본문의 사진은 올해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김민희. 우리는 여기서 작품과 사생활을 구분한 한국영화의 성숙한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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