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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문 Nov 28. 2023

나도 가족

김깜지

깜지의 식사 습관은 생각날 때 먹기이다. 이불속에서 자다가 갑자기 밥 생각이 난 듯, '아! 밥이 있었지.' 이런 뜻의 "엥" 짧고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르며 곧장 밥그릇으로 달려가 우적우적 먹는다. 혹 밥그릇이 비어 있으면 그 앞에 망부석처럼 얌전히 앉아 있는다. 맨처음 그 광경을 보고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 지 깨닫고는 배꼽 잡고 웃었다. 내가 보고 있지 않아도, 내가 보고 밥 줄 때까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밥그릇 앞에 앉아 있는다. 밥을 줄 때도 밥그릇에 음식을 담아 정리해 줄 때까지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얌전히 기다린다. 정말 뉘 집 자손인지, 어디서 배운 건 지, 훌륭한 식사 예절이 몸에 배어있다. 

소파에 앉아 나랑 TV 보는 깜지

처음에는 우리 집 가계 지출에 없던 사료값이 나가니 겁이 나서 싼 사료를 먹였다. 값이 싸니 불량스러웠는지 아이가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 눈에 띄게 살이 쪘다. 큰일 나겠다 싶어서 꼼꼼히 살펴서 좋은 사료를 구입했다. 이전 사료처럼 음식을 탐하지 않았고 배고플 때만 적당히 먹었다. 고양이 사료도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불량식품 같은 사료가 있나 보다. 그것에 비해 지금 먹고 있는 사료는 건강식인 듯하다. 내내 건식 사료만 주었다. 일체의 다른 것은 주지 않았다. 맛난 거 있음 주고 싶었지만, 자기 스스로 냄새만 맡고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커피, 팥앙금, 초콜릿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간혹 아주 조금 간을 보는 것도 있다. 카스테라, 식빵, 생크림. 그러나 정말 깨알만큼 홀짝거리고는 자리를 뜬다. 다른 음식엔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간혹 지인들이 챙겨준 고양이 간식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 조금 불량해 보인다 싶으면 깜지가 먹지 않았다. 좋은 단백질이 필요할 거 같아서 얼마 전부터는 습식 캔 음식도 주고 있는데, 치즈 같은 거 들어간 것은 먹지 않고 오로지 참치나 연어만 들어간 걸로 먹는다. 


깜지가 싱크대 위에 올라가거나 식탁 위에 올라가서 그릇을 엎거나 하는 일은 없다. 우리가 밥 먹는 식탁에 올라오면 어쩌나, 생선 냄새 맡고 달려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자기는 바닥에서 자기 사료로 식사하는 걸로 알고 있다. 간혹 언니가 간식을 전혀 다른 장소에서 주려고 하면 자기 식기 있는 곳으로 간다. '밥은 여기서 먹는 거야.' 언니를 가르친다. 우리가 식사할 때면, 깜지는 자기 밥그릇으로 달려가 밥을 먹는다. 좀 전에 이미 밥을 먹었어도 우리가 식사할 때는 자기도 먹는 시늉이라도 낸다. '가족은 같이 식사하는거야.'라고 말하는 거 같다. 우리가 맛있는 빵이나, 피자, 치킨 등 별식을 먹으려 부산을 떨면, 자기도 특별한 간식을 달라고 한다. '식구들이 별식 먹으면 나도 별식 먹어야지.' 깜지가 간식을 원할 때는 좀 더 적극적이다. 이때는 냉장고 앞에서 서성인다. 캔 간식이 냉장고에서 나오는 걸 알고 있다. 


노트북 들여다보는 깜지 

깜지는 우리 가족들이 식탁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여자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면 어느새 자기도 의자에 올라와 자리 잡고 귀 기울여 듣고 있다. 깜지도 여자이다. 깜지까지 함께 하면 정말 여자들의 수다가 되는 기분이다. 뭔가 알아듣는 표정이다. 우리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면 자기도 편안해하고, 우리가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면 자기도 한껏 진지해진다. 어느 날은 우리가 찬송가 부르는데 깜지가 박자에 맞추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간혹 한 소절 끝날 때, 자기도 박자 맞추어 하이톤 소리를 내었다. ㅎ 그래서 우리도 그 찬송가만 계속 불렀다. 깜지는 주로 나와 함께 지내지만, 언니나 오빠가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조용히 그 방 침대에 올라가 그 옆에 눕고 곁을 지켜준다. 


깜지는 천상 여자다. 언니가 거울 앞에서 외출 준비하는 거를 열심히 쳐다본다. '언니가 나가면 나도 해봐야지.' 꼭 이런 폼세다. 둘째는 꽤 오랜 시간동안 거울 앞에서 외출 준비를 하는데 그때엔 꼼짝하지 않고 언니 옆에서 화장하는 것을 구경한다. 둘째가 미국에 공부하러 떠난 후, 집에 그렇게 화장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10분이면 끝난다. 가끔 깜지는 불도 켜지지 않은 언니 방에 혼자 들어가 거울 앞에서 나를 불러댄다. '화장하는 언니 어디 갔어?' '엄마도 여기서 화장해.' 뭐 그런 뜻인 듯. 이렇게 깜지는 자신이 우리 가족의 일원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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