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보다 관용으로

사랑을 받은 아이가 베풀 줄 아이가 된다고 믿으므로

by 맹다리오

아이가 아팠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의 일상은 궤도에서 벗어나 아이 주위를 빙빙 돌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이 기관에 가지 않으니 오롯이 우리 가족이서 일상을 꾸려가야 합니다. 아직은 자립이 쉽지 않은 시기라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하고, 그만큼 체력이 부치기도 하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글을 발행하고 나서 맞는 돌봄의 시간은 제게 1차원적인 힘듦보다 보다 높은 차원으로 다양한 생각할 거리, 쓸거리를 가져다주는 보다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육아에 있어 글쓰기의 순기능이 아닌가 싶습니다.


29개월 된 아이들에게 성큼 다가온 가을은 고작 3번째 가을입니다. 첫해는 가을이 온 줄도 모르고 방안에 누워서 보냈으니 감각으로 느끼는 제대로 된 가을은 고작 2번째일까요. 그래서인지 모든 것이 신기한 아이들입니다. 아파도 바깥놀이는 반드시 해야 하는 아이들과 함께 산책 겸 텃밭에 다녀왔습니다.

"빨간 꽃, 노란 꽃은 어디 갔어요?"

여름에 길가를 걸을 때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장미와 금계국의 행방 묻는 말에 아이들이 주변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특합니다.

"노란 나뭇잎이 생겼네? 나뭇잎이 떨어졌네? 어? 이제 시원하네?"

라는 순수한 말에 이제 "시원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 와서 그런가 봐"라는 대답을 해주며, 저에겐 3X번째 반복되는 평범한 가을을 다시 새롭게 바라봅니다. 노랗게 변한 나뭇잎을 한 장 주워주니,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그 안에서 가을을 느끼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의 삶을 가장 단순하게 잘 정리한 말은 아무래도 '놀고, 먹고, 자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은 정말 하루 종일 놀고, 먹고, (우스갯소리로 잠깐) 잡니다. 하루 종일 노는 아이들은 주변의 모든 것을 탐색하고 가지고 놉니다. 모든 것이 아이들 눈에는 놀거리입니다. 놀이는 유희를 넘어선 아이들 고유의 인지활동이자 지각활동입니다. 산책을 나서며 경험하는 자연물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놀잇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텃밭에 핀 꽃

아이들이 꽃을 봅니다. 아이들은 꽃을 따고 싶어 합니다. 뭐라고 대답하실 건가요? 저는 "꽃을 따면 안 돼."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아이들은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의 흥미보다 사회적 규칙을 우선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야 사회의 한 존재로 던져진 두 돌경의 아이들에게 규칙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은 부모로서의 의무와 사명 같은 것입니다.

최근에는 이런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여겨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여겨짐'은 어느 정도 강제하는 힘이 있다는 점에서 딱딱하고 경직되게 느껴집니다.


유치원 교사로 9년 근무한 경험을 떠올려봐도 최근으로 올 수록 더욱더 부모의 이런 역할이 강조되고 중요하다 '여겨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관대한 시선보다는 날카로운 시선이 오가고, 아이가 없는 곳이 정돈된 분위기의 장소임을 보증하는 표식이 되거나, 훈육이 되지 않은 말썽꾸러기 아이는 사회의 해라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듭니다. 물론 이 모든 현상들이 잘못되었다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것이 잔인한 순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쩌면 우리는 강력한 규칙으로부터 보다 자비와 관용으로부터 더 많이 배우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어릴 적 꽃으로 한아름 꽃다발을 만들어봤던 경험, 향기를 맡고 꽃잎을 세어보고, 소꿉놀이도 해본 그런 경험이 나에게 꽃이 아름다운 것이란 기억을 심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물론 모든 꽃을 무분별하게 꺾어 망가뜨리는 것이 놀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꽃을 꺾으면 안 돼"보다 "하나만 따서 자세히 봐볼까? 너무 예쁘지?"라는 말이 아이를 좀 더 올곧게 키우는 기억의 조각이 되지는 않을까요.

텃밭에서 놀이하는 아이들, 자연물과 모래는 항상 궁합이 좋습니다

자비와 관용은 물론 누군가에게 강요할 것이 되지는 못합니다. 다만 너그러운 누군가가 베풀어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세 아이를 키우며 나부터 자비와 관용이 있는 부모, 이웃이 돼 보자 다짐해 봅니다. 아름다움을 느껴본 자가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고, 사랑을 받아본 자가 사랑을 베풀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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