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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May 24. 2023

나를 울린 여자들

‘나를 울린 여자들’


아버지 괴롭힘에 시달리던 엄마는 나와 함께

보따리들고 아버지 눈을 피해 시골 기차역으로 나갔다

계속 오는 기차를 그냥 보내며 하늘만 쳐다보다가

해 넘어가는 저녁 으스름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힘겹게 살던 엄마를 위해 뭐든지 하고

나중에 행복하고 맘의 평안을 누리게 해줘야지 했다

그랬던 나의 다짐은 아내가 아프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말년 암과 치매와 당뇨 결핵 등 온갖 질병을 안고

멀리 떨어진 시립병원에서 당뇨로 시력을 완전 잃은 채

고관절이 부러진 수술 후 후유증으로 혼자 돌아가셨다.

이제 그 엄마를 슬슬 잊고 사는 나를 어쩌다 발견하고

미안해지다가 눈물이 핑돈다.

나를 울린 첫번째 여자인 엄마…


이십년 나와 아이들을 돌봐주던 아내는 어느날 병으로

주부만 아니라 남편과 엄마의 자리까지 파업에 들어갔다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결혼 후 이상한 궤변으로 맘 아프게 하던

신랑된 내가 이제 갚아야할 채무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먹이고 씻기고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에 시달리며

그래도 혼자 버려진 여자만은 안되도록 애썼다

응급실 들락거리는 생사의 기로에서도 나는 아무 것도 못하고

거덜난 생존과 살림에도 나는 무기력하고 무능력자였다

젊은 날에 만나 같이 늙어가는 부부가 가장 소중한 거라고

누군가는 노래하고 증언하는데 그게 맘대로 안되더라

이제 우린 잊지도 못하고 잊혀지지도 못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마도 죽는날까지 이 서러움은 둘 다 가지고 갈 것같다.

어쩌다 나를 만나 끝까지 고생을 하다가 갈까? 맘 아프다.

나를 울린 두 번째 여자인 아내…


고약한 무책임 때문도 아니고 아이가 미워서는 더 아닌데

어쩌다 어린 아이를 떼어 놓고 멀리 병원을 떠돌았다

비오고 눈내리는 날, 무섭고 외로운 긴 밤에도 곁에 못있어주고

겨우 수화기 너머로 어쩌냐? 어쩌냐… 말만 해야 했다

여자 아이가 청년이 되는 첫날에도 축하는 고사하고

아파서 걷지도 못하는 날에도 혼자 추스려 등교하게 했다

어느 비오는 밤 울다 전화로 언제 집에 오냐는 아이의 말에

수화기를 붙들고 나는 오랫동안 아무 말을 못했다

꺽꺽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이가 더 슬퍼질까봐 소리를 삼켰다.

없는 부모도 아니고 있는 부모도 아닌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다

어릴 때 떨어져 일터로 가서도 맘이 안놓인다고 수시로 전화하고

제발 다섯살까지만이라도 아무 일 없이 곁에 있게 해달라고

첫번째 소원처럼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면 어디로 보내고 어떻게 키워도 아무 군말 않겠다고…

그래서일까? 딱 두 배로 열살까지 붙어 살게하고 떼어 놓으셨다.

사춘기 성인식 다 거치고 자기 앞길 스스로 세워 살기 시작하면

어느날부터는 아이는 나를 잊고 살거다.

난 잊혀진 부모가 되고.

나를 울린 세 번째 여자인 막내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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