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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Feb 13. 2020

해와달과별은 다 하나님의 것, 하지만 이것만은...



어느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해와달과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갑은...  것입니다. 건드리지 마세요. 라고.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지갑의 주인이 정말 자기 주인이 되더라고.

믿는 신자들이라도 하나님이 해와달과별은  가져가던지  만들어 늘리던지 아무 이의가 없지만  지갑을 손대는 것은 펄쩍 뛰기 쉽습니다. 어쩌면 심각하게 하나님을 멀리  각오까지 고려하기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갑을 늘리는 일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때로는 믿는 일보다 먼저 처리하는 순서로 정하기도 합니다.  어려운 지갑의 존재입니다.

하물며 죽고사는 생명이 달린 경우는 말해 뭘할까요? 많은 신자들이 죽음 앞에서는 부인하거나 못미더워 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를 많이도 봅니다. 엔도 슈사크의 ‘침묵이라는 영화에도 그렇고 다른 영화나 기록에서도 많이봅니다.  생명과 지갑은  맡기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비록 하나님께라도 말입니다.

믿음은 완전히 이해를   있을 때만, 이해를 거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믿을 때만 이해하게 되기도 하는 대상입니다. 저도 수시로 믿음으로 이해를    있는 날이 오기를 자주 기도하게 됩니다.  귀한 복을 간절하게 구합니다. 그럼 지금의  고통과 불안들이 얼마나 많이 줄어들까요.

믿어야만 온전하게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많이 경험했습니다.  이해가 안될 때는 믿을  없어 숱한 오해와 갈등을 겪으며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순서의 문제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 사이를 멀게도하고 사는  괴로워지기도 하는 아주 중요한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세대차이라는 단순한 조건에서도 생각과 행동 가치관들이 이리 심하게 다른데 하물며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만들어진 자녀 우리 사이에는 얼마나  거리가 멀까요? 이해의 폭은  얼마나  강과 같을까요?

우리가 이해할  있는 지식의 범위는 아주 좁고 고작 얕은 물같은데  도랑에 바다같은 하나님의 크기를 모두 담고서야 믿겠다면 가능이나 할지.  깊은 생각과 계획과 사랑을  이해한 후에 믿어보려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혹시나  닥칠지 모를 죽음과 이별을 실감하는 동기가 생기면서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일들을  이해하지 못한  하나님을 믿을  있을까? 원망하지 않고, 불안에 떨지 않으면서 하루인들  자고  먹고 입에 감사를 달고   있을까? ...

결론은 불가능이었습니다. 그동안 불편하지 않고 고통없을 때는 잘도 믿는다고 고맙다고 가지던 마음이 바람앞의 죽은 낙엽처럼 힘없이 날아가버립니다. 정작 가장 필요로허고 눈앞에 현실로 닥치면 아무 쓸모도 평안도 안되는 믿음이라면 그건 가짜입니다. 아내가 겪는 통증들과 두려움과 슬픔에는 잘도 위로를 하던 미사여구는 정말 미사여구 뿐인 믿음이었는지...

이제 지갑도 생명줄도 넘겨야겠습니다. 해와달과별도  하나님의 것이고  지갑과 생명줄도  하나님에게 달렸습니다.  힘으로,  욕심대로 바꾸거나 다스릴 가능성이 없다는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코너에 몰려 어쩔  없이 고백합니다. 주님 마음대로 하세요. 그게 최선이고 그렇게 되는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답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애매하게 모르고 착각속에 살아왔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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