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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Feb 20.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10

침묵의 하소연 02

하루는 향기 눈이 더욱 슬픔으로 깊어졌다.

무슨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컴퓨터를 잘한다. '컴퓨터를 잘한다.'는 문장이 문법적으로는 이상하지만 일상적으로는 가능하다. '공부를 잘한다', '운동을 잘한다'처럼 '컴퓨터를 잘한다'는 것. 나는 컴퓨터를 참 못한다. 특히 취업을 준비한다면 컴퓨터 활용능력 평가라든가 이름도 잘 못 외울 각종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두루 따두어야 한다. 내가 만약 이 학교에 진학했다면 자격증에 도전할 생각조차도 못하고 평생 취업 근처에도 못 갔을지도 모른다. 컴퓨터 능력에 평생 밥벌이를 맡겨야 한다면 나도 거의 자퇴 각 이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전문 분야로 치면 나보다 더 똑똑하고 신기한 아이들이 이 학교 소속이라는 아이러니. 크헐.



이 아이들 사이에선 개나 소나 붙는다는 자격증 시험을 향기는 두 번째 떨어졌다.

컴퓨터가 딱히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어쩐지 시험에 약한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긴장이 유난히 많은 아이들이 있다. 놀란 토끼눈에 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나, 딱 봐도 시험 때 식은땀 깨나 흘릴 것이 상상이 되긴 하지만, 이게 타고난 예민함에서 온 것인지 다른 환경적인 요인이 있는 것인지는 아직 파악이 안 된다. 외로운 것도 서러운데, 왜 시험은 두 번이나 떨어지고 이러는지. 



뭔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할 것 같아서 짐짓 밝게 웃으며 말했다.

"향기 넌 얼굴도 이렇게 예쁘고, 성격도 차분하고, 예의도 바르고,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아인데. 좀 더 자신감을 가져."

"저, 안 예뻐요, 쌤."

"아니, 뭐가 안 예뻐? 눈도 동그랗고, 눈썹도 진하고, 전통적인 아름다움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뭐랄까, 이건 서구적인 느낌도 아니고, 여튼 독특한 매력이 있어."

"독특....."

"야, 평범한 것보다 낫지. 애들 화장하면 기계로 찍어낸 것 같은 얼굴들이잖아. 난 구별도 못하겠더라."

"아니에요, 쌤. 저 안 예뻐요."

"예쁘다니까, 너 잘 보면 동남아 순수소녀 같은 그런 독특한 느낌이 있어."

"......"

"그니까, 여자애들 기세에 눌리지 말고. 향기, 왜 그래? 그렇게 속상했어?"

고개를 푹 숙인 향기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애가 맘고생이 심했나 싶어 안쓰러웠다. 좀 더 자신감 가지고 잘해보자고 파이팅한 건데, 이렇게 서러워할 줄이야.



"쌤, 쌤 좀 무섭네요."

"응?"

"쌤, 비밀이에요. 저 동남아."

"뭐라구?"

"우리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에요. 엄마가 베트남에서 아빠랑 결혼할 때부터 와서 살았어요."

아뿔싸, 이거였구나. 저 눈물이. 동남아 소녀 같은 매력 어쩌구,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미친 소리를. 순간 속에 찬바람이 몰아닥쳤다.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어머나, 향기야. 어머, 정말 몰랐어. 정말 예쁘다는 말을 하려던 건데. 쌤이 그런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해서 그래. 정말 미안하다. 쌤이 미안해. 인종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야. 미안 미안."

"알아요, 쌤. 좋은 사람이에요. 그냥 근데, 다 서러워서. 죄송해요."

그러곤 눈물을 콸콸 쏟았다. 그간 얼마나 뭐가 어떻게 서러웠던 건지. 아, 마음이 너무 쓰리다. 이 노므 주둥이, 아무 말 대잔치는 이래서 하는 게 아닌데. 동남아 미녀 같다니, 진짜 동남아 미녀님께, 내가 참, 이걸 어쩌나. 



미처 말하지 못했다.

편견을 가지는 게 늘 불리했기 때문에. 친구들이 아는 건 더더욱 최악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고 이상하다고 놀리고, 피부색이 왜 그렇게 까맣냐고 놀리고, 발음이 구리다고 놀리고, 쌀국수나 먹으러 가자며 떠들어댔다. 때론 그냥 일 없이 히죽히죽 놀렸다.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도 늘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앉아있다가 조용히 엎드려 자거나 교실을 나가버렸다. 무반응이 진리라는 걸 깨우쳤다. 그래도 엄마 얘기를 하는 건 참기 어려웠다. 초등학교 때는 엄마 놀리는 남자애를 한 대 갈겼다. 엄마가 학교에 오기 어려워서 남자애네 엄마에게 전화로 사과하는데, 듣기 짜증 날 정도로 말을 잘 못하고 발음이 이상해서, 대신 전화기에 대고 죄송하다구욧, 하고 소리를 질러 다음날 선생님께 버릇없다고 한번 더 혼났다. 



친구도 선생님도 알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개명도 하지 않아 매 학년마다 선생님들이 인적사항을 보고 향기를 불러서 물어봤다. 그리고 나면 괜히 불편해졌다. 이번에는 내가 이제 입학한 1학년을 상대하는 담임임에도 불구하고 인적사항을 열람하지 않은 것 같아서 향기는 내심 안심했다. 그런데 오늘 그만 뜻하지 않게 얼굴이 핏줄을 말해준 것 같아 충격이 클 것이다. 서러운 세월이 방울방울 교복 치마 위로 흥건하게 떨어졌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향기 손등 위에 내 손을 포갠 채 그날 점심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유달리 다른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획일화된 생각들로 자기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불편하게 여기고 내가 혹 무리와 다른 생각을 하면 내가 이상한 건가, 하고 회의에 잠긴다. 다름을 인정하는 대신 틀림을 주장한다. 그게 단일민족의 미덕인 것처럼 여기고, 특히나 동남아 계통 혼혈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편견을 가질 때가 많다. 그런 정서가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져있고, 교실 내에서도 암암리에 그런 분위기를 묵인해온 교사들이 있었겠지. 어른들 책임이다. 왜 저런 순수한 영혼이 아파야 하느냔 말이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나는 정말 아무런 편견 없이 했던 말이 맞나, 몇 번을 스스로에게 되물어봤다. 



편견을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조심했어야 했다. 

프랑스 미녀 같다,라고 거짓말을 할 일도 아니고, 또 그런 비유가 칭찬의 의미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동남아 미녀 같다, 라는 말이 진실되다고 해서 꼭 덕이 되는 말도 아니고, 그게 꼭 낮추려는 의미를 담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어쨌든 상처는 상처다. 예민한 바늘이 꽂힌 부위는 어루만지기만 해도 아프다. 바늘을 뽑아줄 수도 없고, 통증을 훈련시킬 수도 없고, 16년 세월을 견뎌온 시간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결국 점심이 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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