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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Feb 18.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09

침묵의 하소연 01

눈이 커다랗고 눈썹이 진하다.

머리가 조금 곱슬거리고 윤기가 없어서 그렇지, 얼굴은 자세히 보면 참 예쁘게 생겼다. 커다란 눈망울에 겁이 좀 많아 보인다. 이름도 예쁜 '향기'. 아이들이 종일 기다리는 가장 기쁜 시간이 바로 이 급식시간인데. 왜 이 여학생은 늘 혼자 교실을 지키고 있을까? 며칠 째 밥을 먹지 않았다. 무척 배가 고플 것 같았다. 가끔 강냉이 한 봉지를 뜯어놓고 종일 먹기도 했다. 그건 일반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팔지 않는 독특한 사이즈였다. 딱 이 학교 매점에만 들어오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스낵류 중 하나였다. 어찌나 작은지 나 같은 사람은 봉지째 한 입에 털어 넣을 수 있을 정도. 저런 걸로 배가 찰까? 보다 못해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 크고 동그란 눈에 금방 맑은 물이 차올랐다. 

내가 뭘 잘못했나, 순간 당황했지만, 모른 척하고 손에 쥐고 있던 구운 달걀을 책상 위에 올려두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3월부터 새 마음 새 뜻으로 다이어트를 해보려고 구운 달걀, 고구마, 이런 걸 싸다니기 시작했다. 학교 급식은 한 끼에 1200 칼로리가 넘는, 고지방 고염 고탄수화물 고칼로리 음식이다. 내 신진대사율이 급식의 엄청난 에너지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아침마다 내 예쁜 도시락통에 내 입이 즐거워하지 않지만 몸이 꼭 즐거워하길 간절히 바라는 맛없는 것들을 채워오곤 했다. 난 굳이 필요도 없는 이런 정보들을 주절거리며 텅 빈 교실에 그 아이와 마주 앉았다. 목 막힐까 봐 내 머그잔에는 따끈한 녹차도 대기 중이다. 나를 한번 올려다보더니, 여자애는 구운 달걀을 집어 들었다. 아이 얼굴에 가득했던 긴장이 달걀에 금이 가듯 피식, 깨뜨려졌다. 



"너도 다이어트 중이니? 이렇게 날씬한데."

"아니요. 쌤도 다이어트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살 붙으면, 몸뚱아리 커버하는 기술도 늘어서 그래."

"핫. 쌤은 드셨어요?"

"못 먹는다는 생각 때문에 다이어트식을 너무 많이 먹어. 그래서 안 빠지나 봐. 엄청 많이 싸다녀서."

"잘 먹겠습니다."

"내일도 같이 먹을까?"

"네. 전 뭘 가져올까요?"

"음, 너까지 가져오면 난 백 퍼센트 실패할 거야. 내 욕망을 줄일 순 없으니, 니가 양이라도 줄여줘."

"하핫."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향기는 나랑 같이 먹었다.

첫날의 대화에 비해 아이는 별로 말이 없었다. 왜 급식을 안 먹는지 궁금해서 슬쩍 알아봤는데, 급식 신청은 되어 있었다. 이 학교는 급식 지원율이 높은 편이다. 다른 학교에서는 급식 지원을 받는다고 하면 큰 비밀 거리였고, 그런 부분이 서로 공개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정보를 다루곤 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급식 지원을 받는다. 그래서 딱히 돈을 못 내서 급식을 못 먹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혹 스스로 먹고 싶지 않아서 급식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와 비슷하게 다이어트를 목표로 하거나, 점심시간에 특별히 하고 싶은 다른 활동이 있어서 빨리 도시락으로 대체해야 할 몇몇 경우, 혹은 대회를 앞두고 체중을 조절해야 하는 극한의 경우 등등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급식은 신청한다. 특히나 갓 입학한 3월 첫 달이라면 더더욱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 코스. 먹기 싫어도 학교 급식이 어떤지 구경도 하고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급식은 꼭 먹어야만 했다. 훔쳐본 서류에 의하면 향기가 급식을 안 먹을 행정적인 이유는 없어 보였기 때문에 일단은 안심을 했다. 선택적으로 안 먹는 중이라면, 언젠가는 먹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하루는 향기가 강냉이를 한 봉지 내밀었다.

내가 무척 좋아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매점에서 내 것도 사다준 것이다. 어쩌면 매번 내가 준 도시락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암말 않고 강냉이를 얻어먹었다. 다이어트에 아무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내가 복스럽게 강냉이를 봉지째 마시는 모습이 향기에겐 무척 흐뭇했던 모양이다. 강냉이를 와작와작 씹어 삼키느라 하마터면 향기가 우물거리는 소리를 못 들을 뻔했다. 뭐라고? 외롭다고 했나? 



씹던 강냉이가 퍼석하게 입 안에서 굴러다녔다.

오물거리던 입이 순간 정지하자 향기는 풋, 하고 웃더니 그대로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외롭다고 했다. 그래서 밥을 못 먹었겠지. 누군가 함께 먹을 사람이 없었겠지. 보통은 입학하면 그냥 중학교 때 아이들과 어울리거나 근처에 앉아있던 누군가와 서먹하지만 차차 친해져 갈 거라고 기대하며 같이 밥 먹으러 간다. 그런데 향기는 그 어느 쪽에도 어울리지 못했다. 같이 밥을 먹어 보니, 향기는 유난히 말이 없었다. 나는 어색한 침묵에 못 이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거리긴 했지만, 씩 웃거나 고개를 끄덕일 뿐 자기 이야기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 성품에 누가 밥을 먹으러 갈 때 덥석 따라나설 리도 없고, 굳이 혼자 가서 밥을 먹는 것도 더더욱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외롭겠다.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친구를 만들어 줄 수도 없고, 내가 친구가 되어 주기엔 도시락처럼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특히나 향기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대체로 향기와 좀 달랐다. 우선은 치마 길이부터 달랐다. 여학생들의 치마는 대체로 연예인 화보 같았다. 엉덩이선을 간신히 덮은 정도, 아래로 쭉 뻗은 다리 길이가 짧은 치마 길이와 반비례했다. 얼굴도 연예인이다. 어른인 나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선이 굵은 화장, 가방은 안 가지고 다녀도 화장을 고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파우치는 메이크업 박스 부럽지 않게 빵빵했다. 향기는 화장하지 않아 더욱 상대적으로 가무잡잡한 얼굴이지만 또렷한 눈코 입에 보기 드문 쌩얼이다. 무릎 바로 위까지 오는 적당한 치마 길이, 수수한 백팩에 잔뜩 짊어지고 다니는 교과서, 어딜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고등학생의 표본이랄까. 이에 반해, 대체로 씹어 뱉는 욕설 섞인 말투며,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거울이며, 수시로 뿌려대는 숨 막히는 향수 냄새며, 향기에게 여학생들은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을 것이다. 



외롭다는 건, 단지 급식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다는 뜻이 아닌 것 같다.

동류를 찾지 못한 외로움이랄까.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향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이 학교는 각 특성화 계열별로 입학 때 정해진 학급이 3년 내내 그대로 특성화된 자기 전공 분야가 된다. IT계열은 IT계열대로, 경영계열은 경영계열대로, 회계 계열은 회계 계열대로, 마케팅 계열은 마케팅 계열대로, 각 계열별 두 학급씩 분반된 특성화 학급, 섞여봤자 두 학급 안에서만 섞여 배정된다. 학급 인원이라고 해봐야 25명인데, IT계열인 우리 반 여학생은 옆반과 다 합쳐봤자 8명이 전부이다. 이 안에서 급식 짝꿍을 찾지 못하면 3년 내내 혼자 지낼 가능성도 높다. 



급식만이 문제가 아니다. 

영혼을 나눌 친구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없다는 건 지옥이다. 향기에겐 참 어렵고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갑작스러운 '외롭다'는 말. 가슴이 저린다. 최근 며칠간의 반강제 다이어트식으로 살짝 홀쭉해진 향기의 볼살처럼 일시적인 감정은 아니라는 직감. 선선한 눈길에 이미 오래 배인 향기 같은 향기의 외로움. 욕설보다 더 당황스러운 감정의 직설법, 이 공을 어떻게 되넘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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