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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Feb 28.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12

삼총사의 진짜 싸움 01

샛별이가 뜨고 진 후, 이 학교에서는 오래 미루어왔던 서열 정리로 어수선했다.

지난번에 얘기했다시피 우리 반은 대단한 반이다. 북부 지역 세 도시의 3대 천황들이 한 반에 다 모였다. 그 동네에서 이분들 이름만 대면 다 눼눼 하고 알아 모시는, 드높은 명성의 소유자들이 세상에, 우리 반에 다 있다. 그래서 첫 주엔 이 웬수들 얼굴을 구경하러 아이들이 몰려들어 복도가 북적북적했다. 난 잘 모르지만 딱 봐도 교복이 이미 느물거리는 2,3학년 형님들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건들거리며 복도 창문 앞에다 침을 뱉고 사라졌다. 덕분에 세 지역 대표님들께서는 번갈아가며 마대 걸레로 아침저녁 복도를 닦아야만 했고, 종종 누군가 뱉어버린 껌도 일일이 주워 담아야 했다. 손님을 불러 모은 사람들이 마땅히 치러야 할 서비스라고 가르쳤다.



한 지붕에 세 왕좌는 없다. 

이왕 각 지역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서로 지역의 안부도 묻고 형님들의 근황도 나누며 약간의 외교적인 시간을 가졌다. 그렇다. 충분히 가졌다. 이젠 좀 슬슬 서로의 관계를 더 분명히 해야 할 때가 왔다. 이미 샛별이를 통해 전에 들은 바가 있지만, 그날이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아이들은 은밀하게 움직일 것이고, 그날의 결과에 따라 패거리는 어디에 가장 먼저 인생을 의탁해야 할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제발 조용히, 그리고 아무 탈없이 그날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드높은 명성에 기대어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었던 내 실수일 뿐이다. 



금요일이었다. 

거의 격주에 한번, 금요일 밤은 징계위원회로 불타오른다. 아무리 기계적이라고는 해도 되도록이면 죄인인 담임교사는 피고석에 서야만 했고, 간단한 출석 같은 문제라 할지라도 순서가 뒤에 있으면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만 했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학교와 제도이다. 나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지각 중인 '모델' 녀석의 출결 징계와 관련하여 두 시간째 줄을 서고 있다. 모델 녀석은 지금 학교에 없다. 이따 시간 맞춰서 오겠다며 연락을 달란다. 아효, 내 팔자야, 누가 보면 내가 죄인이고 네가 참고인인 것 같다. 금요일이라니, 정말 상식적이지 않다. 두 시간째 대기라니, 정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무슨 징계위원회를 이렇게 콘서트 입장 기다리듯이 몇 시간씩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느냔 말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모델은 결국 오지 않았다.

그날 모델은 하교 후 뒷산에 있었다. 모델은 사실 탑 쓰리 중 한 명이다. 하필 오늘이 그날이었다. 모델은 제일 먼저 쓰러졌다. 서열 3위가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둘이 더 겨루었다. 모델은 쓰러지고 난 뒤 징계위원회를 올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정신적인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쓰러지고 징계위원회에 달려오기엔 너무 모양이 빠졌다. 도저히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남은 둘의 승패를 확인해야 했고, 뒷정리도 해야 했다. 그게 3위의 몫이다. 자기 출신 지역 아이들도 다독여야 했다. 전쟁 중에 행정 업무를 위한 퇴각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북부 지역에서 주먹으로 질서를 다스리는 자들은 모두 모였다. 하필 그날, 우리 학교 뒷산으로.



모델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누구의 전화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 거다. 그래도 약속을 중요시하는 사나이라는 걸 알기에, 문자를 남겼다. 못 오는 이유라도 알고 싶다고. 선생님, 저 며칠 학교 못 가요. 문자에 답이 왔다. 정말 모델같이 길쭉하고 마른 몸에 모델같이 쭉 빠진 잘생긴 얼굴. 그 얼굴이 상했단다. 선생님은 아까워서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는 예쁜 얼굴에 상처가 났단다. 오늘이 그날이니? 아마도요. 곧 마무리해요. 어디야? 안 돼요. 그냥 모른 척해주세요. 유혈 사태니? 아니요. 우린 그렇게는 안 해요. 괜찮아요, 쌤. 난 안 괜찮아. 니네 셋 다 우리 반이잖아!!



교사로서 묵과할 수만은 없었다.

징계위원회가 한창 진행 중이고, 다음 순서가 모델이다. 모델을 호명했다. 담임교사는 같이 입장한다. 들어가자마자 말했다. 지금은 이걸 할 때가 아니라고. 뒷산에 좀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다들 황당해했다. 우리가 지금 가지 않으면 경찰이 먼저 갈지도 몰라요. 그때였다. 교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민원이 들어왔다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동네 주민이 뒷산에서 싸움판을 보았는데, 가관이라고, 너무 무섭다며 일단 학교로 먼저 신고했고, 곧 경찰을 부를 것이라고 했단다. 우린 이런 전화를 자주 받는다. 동네 주민들의 민원이 시도 때도 없이 들어와서 학생부장님은 거의 민원 전담 교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간 징계위원회에 숨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새 나는 학생부장님 차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좌 학생부 마동석 선생님, 우 학생부 똥파리 선생님, 앞좌석 학생부장님과 교감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마동석쌤이 물었다. 모델 녀석이 안 와서 연락했는데, 지금 정리 중인가 봐요. 지금 우리 패싸움 중입니다,라고, 그걸 대답해줘요, 그 녀석이? 네. 애들 어떻게 되는 거예요? 뭘 어떻게 돼요, 학폭이면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열고, 징계 때려야지. 뒷산에서 뭘 하는 거야, 1학년들이. 서열 정리하겠죠. 똥파리쌤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누가 일인자 인지나 좀 볼까? 누가 일인자면 뭐 하게요? 오늘의 주연들이 다 우리 반인데. 전 어떻게 하나요? 뭐, 좀 귀찮게 되셨네, 김은희 선생.



나더러 차에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일제히 네 남자쌤들이 차에서 내려 현장으로 뛰어갔다. 나는 답답해 죽겠는데, 나더러 나오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이 몹시 흥분한 상태이므로, 혹시 모를 사태에 여자 선생님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걸 매너라고 감격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경찰차가 도착했다. 나는 점점 상황이 나빠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문자가 왔다. 쌤, 걱정 마세요. 대충 정리했으니까. 여기 다 괜찮아요. 차에서 벌벌 떠는 거 다 보이네. 뭐시라? 벌벌 떨어? 내가 왜 벌벌 떨어? 너네 인생이 어떻게 될까 봐 벌벌 떨지. 이제 어쩔 거야, 어쩔 거냐구, 이 바보 뭉충이들아. 



경찰은 순순히 물러났다.

학교 선생님들이 먼저 도착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이들은 다 해산시키고 탑 쓰리만 따로 불러 세웠다. 현재 서열 3위는 모델, 2위는 꿀알바의 주인공 정우, 1위는 태수. 똥파리쌤이 궁금해하던 서열은 이렇게 정리가 되었다.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질서의 시대가 열린다. 금요일 밤이 무척 길어졌다. 불 꺼진 학교, 어두운 복도를 지나 학생부에 도착했다. 아이들에게서 진술서를 받고, 폭력에 직접 동참했던 아이들의 명단을 확보했다. 부모님들께 상황을 알려드렸다. 나는 학교폭력대책위원회는 학교폭력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열리는 것 아니냐고, 이건 가해자 피해자 개념이 아니라 아이들이 실력을 겨루는, 물론 위법이고 해악이지만, 누군가 일방적으로 때리고 맞는 구조가 아니었으니 학교 폭력으로 다루지 말자고 제안했다. 물론 기각되었다. 학교 폭력은 누가 때리고 맞았느냐가 아니라 학교 내에서 폭력이 발생했느냐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엄연히 이들은 폭력을 심각하게 행사했다. 괜히 나섰다가 개념없는 선생으로 비난만 받았다. 



이 사태를 나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모델 얼굴이 찐빵이 되었다. 정우는 얼굴 한쪽만 식빵이 되었고. 태수는, 그냥, 빛났다. 무서운 녀석. 그렇게 나는 하룻 저녁에 북부 지역 서열 1,2,3위를 거느린 가녀린 쎈캐가 되었다. 아아, 다음 주엔 내가 교통사고라도 나야 하나? 정말 학교 오기 싫다. 밤 11시 퇴근. 역사에 남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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