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가운 열정 Mar 07.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13

삼총사의 진짜 싸움 02

지루한 학폭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아이들을 묶어서 징계하지 않고 시간 간격을 둔 것은 학교로선 현명한 선택이었다. 제일 먼저는 1위 태수가 사라졌다. 무려 열흘 간의 출석정지가 떨어졌다. 태수는 좀 괴로워했다. 학교를 잘 다녀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욕심 있는 아이치곤 큰 일을 저질렀다. 태수 주먹에 나가떨어진 아이들의 치료비를 일일이 다 보상해야 했다면 태수 부모님 허리가 제법 휘었을 것이다. 태수는 몸집이 다부지고 단단했다. 주짓수로 유연성과 기술을 가졌고, 주먹 자체도 오랜 복싱으로 야무지게 길들어 있었다. 운동으로 방어력도 뛰어나니, 아이들 증언에 의하면 거의 한 대도 맞지 않고 깨끗하게 정리했다고 한다.



태수는 사실 일인자에는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늘 싸움에 휘말렸다. 관심이 없어도 아이들은 환호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높이높이 올라갔다. 형님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자꾸 어디선가 부르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불려 다니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왜 그렇게 운동을 많이 했는지 물어봤다. 운동을 좋아하고, 운동을 다른 것에 비해 잘하는 편이고, 꾸준히 하는 훈련이 매력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덩치를 보고 누군가 싸움을 걸어왔다. 그래서 좀 귀찮아서 대충 응수했는데 소문이 났다. 또 누군가 도전해왔다. 눈빛으로 그냥 돌려보냈다. 귀찮아서. 그래서 제일 센 놈만 나서라고 선포했다. 그러자 중딩 일인자가 나왔다. 그래서 또 대충 응수해줬다. 그리고 그냥 일인자가 되었다.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잘해주고, 심심하지 않게 놀아줬다. 어차피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다. 눈치를 보며 발 빠르게 움직여주는 친구들이 좋았다.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오토바이도 타고, 술도 마시고, 생각보다 싸움 같은 건 많지 않았다. 명성만으로 편하고 재미있는 생활이 이어졌다. 내심 그 자리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동도 빠짐없이 다녔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기를 원했던 건 아니다.

학교를 성실히 졸업하고 취업도 해야 한다.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 그런데 무려 열흘이나 출석정지라니. 출석정지는 출석부에 무단결석으로 남는다. 1학년 초부터 무단결석 열흘이라니, 취업에 좋은 인상을 주긴 어렵겠다. 어차피 치러야 할 과정이라면 피하긴 어렵고, 대충 빨리 끝내고 싶었던 건데,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다.



열흘 뒤 나타난 태수는 살이 쪽 빠졌다.

사실상 주말 포함하면 2주간 못 본 셈인데, 그 사이 살을 어떻게 그렇게 뺐나, 정말 진심으로 궁금했다. 다이어트 점심을 한 달 넘도록 먹고 있는데, 역시 양이 문제인가, 도무지 살은 빠지지 않고 심술만 더해갔다. 뭘 했기에 저렇게 살이 빠지지, 저 놈은 사람 패고 다녀도 살 빠지고, 착하게 살아도 나는 왜 살이 빠지지 않느냔 말이다.

"잘 다녀왔느냐, 반성은 좀 했니?"

"네. 쌤, 제대로 살려구요."

"뭘 해서 살은 그렇게 쪽 빠졌냐?"

"운동이요."

"운동으로 살이 그렇게 빠져?"

"밥을 많이 안 먹었어요."

"왜? 일부러 살 빼려고?"

"아니요. 잠이 안 와요, 쌤. 밥맛도 없고."

"어디 아파?"

"글쎄요. 쌤은 언제부터 쌤이 하고 싶었어요?"

느닷없다. 나? 왜 내가 너 살 빠진 얘기 들으려는데, 질문을 내가 받고 있는 거야?

"아, 나? 음, 글쎄. 솔직히 쌤이 쌤 하고 싶었던 적은 별로 없어서. 기억이 안 나."

"와, 쌤이 별로 하고 싶지 않아도 쌤이 되긴 하네요."

"응, 난 라디오 PD가 되고 싶었는데, 시험에 떨어져서 못했어. 이제 와서 음악으로 유튜버라도 해볼까?"

"아뇨. 못생겨서 안 돼요, 쌤은."

"너는 팩트도 폭력인 거 몰라? 폭력 금지야, 나쁜 놈아. 꺼져."

"안 돼요. 쌤, 그러니까 쌤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쌤도 하게 됐다는 거죠?"

"왜? 넌 뭘 하고 싶은데?"

"그걸 모르겠어요. 쌤, 나는 뭘 해요? 잠이 안 와요, 쌤."



우리의 일인자께서, 불면증이시란다.

미래가 갑갑해서, 살이 쭉쭉 빠진단다. 이런 학교에 있으면 남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포지션 중 하나가 일인자 자리인데, 열흘 출석정지의 대가를 치르고 더 큰 유혈 사태를 막으며 정리한 북부지역 최고 권위자께서, 이런 자리 필요 없다고, 열흘 무단결석 빨간 줄이 두렵다고, 취업 걱정에 잠이 안 온다고. 이 녀석아, 이래서 넌 미래가 있는 거야. 갑자기 태수 얼굴 뒤에 후광이 보이는 것 같다.



처방전을 내려주마.

"너 하는 것 봐서. 네 인생에 네가 진심이라면, 나도 네 인생, 진심으로 한번 들여다보자. 오늘부터 금연, 콜?"

태수는 말없이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냈다.

"이거 끊으면 답이 생겨요?"

"응, 생긴다. 이것부터 시작이다."

"진짜죠?"

"진짜야."

"담배랑 무슨 상관이예요?"

"완전 있어, 엄청 밀접해."

"저 뭐 해 먹고살아요?"

"담배 끊고 얘기하자. 오늘 다 얘기하면 너 체해. 금연하면 잠 잘 온다구. 오늘 밤부터 굿 나잇이다. 오키?"



태수는 금연 사흘 째가 되는 날 다시 찾아왔다.

오늘 만 72시간이 지났다고. 응, 잘하고 있네. 몸이 아직은 찌뿌둥하다고. 응, 그래도 더 견뎌야지. 금연 힘들지만 견디고 있는데, 다음 단계는 뭔지 궁금해져서 왔다고. 다음 단계는 좀 어려운데, 벌써 두 가지를 같이 해볼 수 있으려나. 진짜 어려운 건데. 뭐든 일단 해보고 결정할 테니, 말씀만 하시란다. 수업을 들어보라고. 네? 학생에게 수업을 들어보라고 권하는데 매우 엉뚱한 요청을 한 것 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수업이요? 응, 수업. 들어볼래? 무슨 수업이요? 뭐든, 아무거나, 쉬운 것부터. 들어보고 이해가 되나 어쩌나, 한번 해보라고. 왜요? 왜라니, 너 학생이잖아. 학생이 수업 듣는 게 그렇게 이상해? 아니, 해본 적이 없어서요. 그러게, 그래도 이제 해봐야지. 졸업한다고 다 취업하는 건 아니잖아. 준비가 되어야지. 아, 벌써 머리 아파요. 응. 나도. 같이 아프자.



일인자 미래 개조 프로그램, 갑자기 오늘부터 우린 시작이다.






이전 12화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1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