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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Mar 24. 2018

당신이 싫었던 건 당신이 내 모습을 닮아서였을까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타인의 모습, 곱씹어보면 내 모습이더라

일하는 시간 대부분을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다보니 언젠가부터 휴식시간이 주어지면 사람들을 피하게 됐다. 번아웃 증후군과 우울증 진단을 받아서 휴직을 앞둔 무렵에는 사람 목소리도 지긋지긋해서 음악도 클래식만 들었다. '사람'자체에 질려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가 때는 인파가 몰리는 유명 관광지보다는 관광객이 비껴가는 한적한 곳을 주로 찾았다. 당연히(?) 불특정다수와 만나 여러날을 함께 부대껴야하는 이른바 '패키지투어'는 내 휴가 옵션엔 없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몇차례 다녀온 패키지투어 기억 속엔 적어도 한둘, 많게는 대여섯의 (내눈에는) 이상한 여행객들이 섞여있었다. 굳이 돈을 써가며 어떤 사람들일지 모를 이들과 소중한 휴식시간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여행은 패키지라는 옵션을 포기하기 힘들었다. 이동의 편의성과 여행지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가능성, 여행지에 대한 설명 요구 등에는 패키지가 제격이었다.


대개는 여행경비'만' 부담했지만 이번에는 "너 쉴때 아니면 언제 함께 여행을 가겠냐"는 엄마의 말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말 나온 김에 가자. 언제 또 부모님과 여행 갈 시간이 나겠냐'는 마음도 있었다.



24명. 이번에 함께 관광을 하게 된 인원이었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여행사 직원이 건네준 일정표에 인원을 확인하고 '너무 많지 않나'생각했다. 인원이 많으니 서넛은 집합시간에 늦는 '민폐일행'이겠거니 예상했다. 예상과 달리 집합이 늦어 일정이 지체되는 일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있는 분들이었다.


다만 다른 일행들이나 상대는 아무런 신경도 안 썼겠지만 내 눈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도 몇명 있었다.


모두가 즐기는 액티비티에서 홀로 얼굴을 잔뜩 일그린채 "나는 이런것 싫다"는 티를 팍팍내는 사람, 마트나 노점 등에서 다른 일행이 물건을 사오면 "나는 다른데서 더 싸게 샀다"고 자랑(?)하는 사람, 어떤 대화가 시작되어도 "내가 그 경험이 있는데"라며 대화주도권을 빼앗아 가는 사람 등. 


"엄마, 저 사람들 왜 저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티 내지마. 너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 뭘 신경쓰니" "보기 싫다" "닷새만 참아" 다른 사람때문에 오랜만에 엄마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네"하며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속으론 '내가 이래서 패키지를 안 온다. 다신 오나봐라'를 계속 되뇌었다.


원래 가격의 2~3배 뻥튀기 된 선택관광 가격도 눈에 거슬렸다. 우리돈으로 1.4만원 정도인 부페를 40달러로 책정하거나 자유여행을 오면 1만원 안팎인 액티비티를 20~30달러로 책정한 선택관광표를 보니 도저히 표정관리가 안 됐다.


우리는 거의 선택관광을 안 했지만, 선택관광을 가는 일행들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었다. (어르신들이 많았다) "선택관광 너무 비싸. 해도해도 너무 한 거 아냐?" "괜히 말하거나 티 내지마라. 우리는 선택 안 하지 않았지만 선택한 사람들 기분을 망칠 필요가 있니"


(패키지투어를 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왕복항공권과 호텔숙박비를 생각하면 패키지투어 가격은 도저히 나올수 없는 가격이다. 어쩌면 원래 가격의 2~3배는 뻥튀기된 가격으로 제시된 선택관광은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그래서 부모님의 패키지투어는 항상 '노옵션 노쇼핑 패키지'가 원칙이었지만 이번엔 엄마의 일정상 선택관광과 쇼핑이 포함된 패키지투어 밖에 선택권이 없었다. 물론 여행업계의 행태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으므로 이에 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한다)


밤 비행기로 돌아오는 길, 홀로 '비호감' 딱지를 붙였던 여행객들의 모습과 엄마와 나눴던 대화들, 그리고 내 모습들을 곱씹어 보았다. 기분 나쁜 감정을 숨지기 않는 모습, '나는 알지만 당신들은 모른다'는 식의 오만한 태도, 지식과 정보를 과시하는 태도는 모두 내가 갖고 있던 안 좋은 면들이었다.


내게는 아무런 직접적 피해을 주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던건 어쩌면 숨기고 싶었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스스로의 안 좋은 면들을 '타인이라는 거울'로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또 그들을 보며 '나를 보며 다른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린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태까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실패했던 일들을 받아들이고 속았던 일들, 대화 도중에 앙금으로 남아 있는 것까지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프랑수아즈 돌토의 말이다. 내 모습을 똑바로 직시하는 것은 아픈 일이다. 몇 개의 뾰루지 같은 모남을 봤을 뿐인데 속이 아릴만큼 아프다. 지금부터 파 들어가기 시작하면 고구마 줄기처럼 나올지 모를 못난 내 모습을 볼 생각을 하니 실은 두렵다.


하지만 못난 스스로를 인정하고, 극복하고, 사랑한 뒤에야만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재단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는 것만으로 사람에게, 세상에 날섰던 마음이, 감정이 조금은 무뎌지고 어쩌면 따뜻해지지 않을까. 사람답게 사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 쉽지 않은 과제다. 적어도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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