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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Jun 15. 2018

끝을 생각하면 지금을 살게 된다

이제야 알게된 진짜 중요한 것과 실은 덜 중요한 것


인생을 살면서 '빨간색' 신호등을 마주할 때가 있다. 지난해 겨울이 그랬다.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출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머리를 스치던 생각이 있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정말로 도로로 뛰어들게 되는 날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때 정지 신호등을 보고도 지나쳤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하는 것 만으로도 아득하다.


두 번째 정지 신호등을 이렇게 빨리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루가 일 년 같다'는 표현은 상투적인 비유법이 아니었다. '빛의 속도를 제외한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날의 하루는 일 년 같았다.


건강검진센터에서 온 전화에서 "결과지를 받으면 큰 병원으로 가보라"며 류머티즘 가능성을 언급해준 뒤, 결과 수치를 내 손에 받아 들고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의 시간은 자아가 뒤흔들리는 속도에 반비례해 느리게 흘렀다.


"질환이 악화될수록 주위 연골과 뼈로 염증이 퍼지는데, 이는 관절의 파괴와 변형을 초래할 수 있으며 심하면 혈관염, 피부의 결정, 폐의 섬유화까지 유발할 수 있다...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게 된다면 2년 이내에 관절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생길 수도 있다"

 

검진 결과지를 들고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아직 진단을 받지 않았으나, 진단 가능성이 높은, 아마도 내가 함께해야 할 질병에 대한 인터넷 속 (주로 가장 극단적인) 정보들 하나하나가 날카롭게 나를 스치고 베고 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큰아버지, 친구와 지인 부모님 장례식장들을 적지 않게 다녔지만 내 일이라곤 생각지 않았던 일에 대해 처음으로 곰곰이 생각했다. 언젠가는 또 누구에게나 닥칠 인생의 끝자락에 대해. 또 의지대로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시간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당연한 진리도 처음으로 곱씹었다.


그리곤 알았다. 어쩌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돈이 더 생기면 또는 여유가 더 생기면 하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것들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가는 큰 계획부터 그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상, 듣고 싶은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소소한 기쁨들까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쩌면 내가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그때는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했다.


더 좋은 미래, 해피앤딩, 행복한 끝을 위해 현재의 행복이나 기쁨은 잠시 뒤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진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지금은 덜 소중한 것에 잠시 집중한다고 했지,  오히려 정말 소중한 것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생각했다.



의사에게 진단을 받으면 마음이 무너져 내릴 줄 알았는데 홀로 여러 차례 천국에서 지옥까지 오고 가는 연습 아닌 연습을 한 탓인지 놀랍진 않았다. "완치는 없지만 진행속도를 늦추는 것은 가능"하단 말도 크게 충격적이진 않았다. 그리곤 다짐했다. 일찍 마주한 두 번째 빨간색 신호등도 지나치지 말자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 김종국이 말했다. "오늘부터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삶을 산다고 생각해야 된다"라고. "너의 삶에 운동이 추가된 게 아니고 삶이 변하는 것"이라고. 맞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일상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매일 요가를 한다.


'건강을 읽으면 모두 잃는 것'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인생의 맨 앞자락에 자리하게 됐다. 재력과 명예 등 어린 시절 동경했던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바둥거리는 삶도 나 자신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진리를 체감한다.


무엇보다 '내 사람'들에 대한 의미를 매일 곱씹는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게 됐다. 매일 가족들을 안아주려고 노력한다. 언제고 운명이 마주했을 때 '미안함'을 남겨두고 싶지 않다. 급하고 자주 흥분하는 성격을 완전히 바꾸진 못했지만, 사후약방문일지라도 상처 준 이들에 대한 사과를 미루지 않으려고 한다.


불행이라면 불행이고, 시련이라면 시련을 마주한 뒤에야 겨우 주변을 둘러볼 정도로 어리석게 살았다. 하지만 내일은 오늘을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고 싶다.


시야를 가렸던 덜 소중한 것들 위로 운명이라는 태풍이 몰아치고 난 뒤에야 겨우 더 중요한 것들이 보인다. 끝을 생각하곤 겨우 현재를 살게 됐다. 아팠지만 그래도 이런 우연이, 어쩌면 운명이, 지금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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