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나의 성향과 기질을 드러낼 것인가? 숨길 것인가?
“우리 조직이 더 나은 조직이 되기 위해서 어떤 것을 하면 좋을까? “ 에 관련해 생각해 보고 자유롭게 의견 줄 수 있겠어?
영업 마케팅 서비스의 부사장님을 보좌하는 수행 비서실에서 일을 할 때 어느 날 부사장님께서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부사장님 밑에 수백 명이 다양한 부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나는 표면적으로는 주로 그 부서장들 (상무나 전무)이 부사장님께 보고하는 cross functional 회의체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정기 업무를 하고 있었다. 회의를 준비하고 회의록을 쓰고 회의록에 쓰인 액션 아이템들의 진행상황을 트래킹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추가 역할은 부사장님의 귀와 눈이 되어 직원들이 요즘 어떻게 느끼면서 일하고 있고 어떤 부서 간 갈등이 있는지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조직 분위기를 파악하는 보좌관의 업무였고, 부서 간의 이해관계를 넘어 부사장님의 리더십하에서 하나의 팀으로 서로 시너지를 내기 원하시는 부사장님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전략을 부서 내에 흐르게 하는 커뮤니케이션 업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돌아보니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었고, 당시 차장이었던 내게 물으신 것이 맞는지도 이상할 정도로 포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부사장님과 나 사이에는 부장, 상무, 전무라는 세 개의 직급 체계가 더 있었고 부사장님은 나보다 한참 선배였다. 인생경험으로나 직장생활에서나
그런데 나는 이 질문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묻기보다는 그 간의 부사장님과의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나의 상상력을 더 해 자유롭게 해석하였다. 나의 해석은 질문에 직접 드러나지 않은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어 “A 부서와 B부서 그리고 C부서 모두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A, B, C 가 하나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우리 A&B&C가 더 소통과 협력을 잘할 수 있을까?“라고 하는 확장된 의미였다. 맞거나 틀리거나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직을 위한 더 나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어 기여해 보자는 마음이 더 앞섰다.
오히려 나에게 하얀 도화지에 맘대로 그림을 그려도 좋다는 완전 서술형의 질문/요청으로 받아들였기에 이 질문에 나는 너무나 신이 났다. 그동안 윗사람들이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주어 나의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어서 갑갑한 적도 많았고, 또 어떤 때는 하루종일 앉아 회의록 쓰고, 엑셀 피봇 돌려가면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 하고 의미를 곱씹어야 했었다. 나는 그런 루틴 한 일상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다. 반면 부사장님이 내게 주신 질문은 자유로운 생각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맘대로 자유양식으로 정리해도 되는 미래 지향적인 것이었다.
그동안 조직을 관찰하면서 발견했던 것부터 시작해 보았다.
첫째, 우리 조직에 있는 독특한 현상들, 좋은 것, 갈등, 문제 등등을 정리해 보았다.
둘째, 그 현상 중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점들을 정리해 보았다.
셋째, 인터넷에 오픈되어 있는 다양한 기업의 이슈들과 현상들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써, 내가 문제라고 정의한 것들이 정말 문제인지 검토해 보았다.
넷째, 그리고 다른 조직에서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이종 산업, 이종 회사에 대해서 영리, 비영리 기관의 사례도 들여다보았다.
다섯째, 적용 가능한 제안들을 정리하였다.
자유양식으로 정리하여 들고 갔고 부사장님과 앉아서 하나씩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하니 부사장님께서는 ”이것은 틀렸다. 저것은 아니다 “ 이런 판단은 하나도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이 아이디어는 이렇게 조금 더 보완하면 어때? 내가 있던 다른 조직에서는 이렇게 했어. 필요하면 이전 조직에서 나를 도왔던 직원을 소개해줄 테니 연락해 봐. “ 하셨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 중의 하나는 부사장님의 전 직원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것이었다. 짧은 뉴스레터였지만 다양한 부서에 ”뉴스를 보내 주세요. 부서에서 자랑하고 싶은 것, 업무적인 공헌, 직원의 소식 등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 ” 하고 요청하여 수십 개의 소식 중 선별된 다양한 소식을 뉴스레터에 담아, 부사장님의 메시지와 함께 정기적으로 발행하였다.
지금이야 뉴스레터 발행하는 것이 흔하디 흔하고 읽을거리가 넘치지만, 그때는 다양한 소식을 수집하고 선별하고 다시 취합하여 발행하는 한 장의 소식지가 큰 조직의 소통에 아주 좋은 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누구도 시키지 않았던 자발적인 에디터 겸 편집장이 되어 부사장님이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작업했던 기억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부사장님 옆에서 정말 다양한 일을 새롭게 시도해 볼 기회가 있었고, 기분 하나도 안 나쁘게 수평적인 문화 속에서 부사장님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 부사장님은 현재 나의 멘토이고 요즘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카톡으로 먼 나라 라스베이거스에 계신 부사장님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그 이후에 나는 부사장님과 같이 멋진 리더가 되고 싶어서 빚을 내어 대학원을 가기도 했다.
왜 이렇게 나와 부사장님은 서로 잘 맞았을까? 직급도 차이 나고, 연령도 다르고, 문화적인 배경도 다른데 (부사장님은 미국인) 말이다.
나중에 리더가 되어서 그때를 돌아보니 부사장님과 나는 리더십의 성향, 소통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비슷했던 것 같다. 부사장님의 MBTI를 모르지만 나는 그분이 N (직관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사람의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하는 방식인데 이 중 정보 흐름의 방식에서 S(Sensing) 유형의 사람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보에 초점을 맞추고 N(iNtuition) 유형의 사람은 직관적이고 추상적인 아이디어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N (iNtuition)
- 정보와 아이디어를 전체적으로 보고, 패턴과 연결성을 중시한다.
- 구체적인 사실보다는 가능성과 큰 그림을 중요하게 여긴다.
- 새로운 아이디어, 창의적 접근, 추상적 사고를 선호한다.
MBTI에서 “N” 유형은 직관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을 중시하며, 구체적인 사실보다 가능성과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몇 가지 예를 더 살펴보자면
1. 큰 그림과 가능성에 집중
- 세부적인 정보보다는 전체적인 패턴, 추세, 가능성을 보려고 하고,
- 미래 지향적이며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를 고민한다.
2. 추상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 현실적인 사실보다 아이디어나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고
- 상상력과 창의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거나 문제를 해결한다.
3. 연결성을 중시
- 서로 다른 정보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통찰을 얻으려 하고
- 기존 상황이나 아이디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4. 미래에 대한 관심
- 현재보다 미래에 더 관심이 많으며, 장기적인 결과를 고려하고
- "지금 이 선택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들은 직관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찾는 데 강점을 지닌다고 한다.
그렇다면 “S”는 어떤 성향을 가졌을까?
MBTI에서 “S” (Sensing) 유형은 현재의 사실과 경험에 집중하고,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를 선호하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보 선호하고 세부 사항에 주의를 기울이며 정확하고 구체적인 지침과 정보를 선호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의 강점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제공한다.
부사장님과 나는 “N”의 성향을 가진 공통점이 있었기에 아이디어, 가능성 등에 기반한 조직을 위한 소통이 원활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나랑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과 같이 일할 수는 없지 않은가? 16가지 유형 중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날 확률은 1/16이고 더군다나 모든 성격 유형의 인구별 분포가 동일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부사장님과 2년 반을 아주 잘 보내었지만 그 앞으로 뒤로 만나고 함께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서로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 같은 경우를 훨씬 더 많이 맞닥뜨리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니 내가 리더가 되고 나서 “N”의 방식으로 업무 지시 또는 과제를 주었을 때 상대방은 얼마나 막막했을까라고 헤아려진다.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나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하고 어려움을 겪었을 직원이 많았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 번은 우리 본부의 부장님들에게 “부장님, 우리가 새로 출시한 부품 브랜드의 판매 증진을 위해서 각자 부서별 자유 워크숍을 통해서 전에 없던 방법의 아이디어를 도출해서 다음 달 미팅에서 나눠 보았으면 합니다. ” 이렇게 하고 미팅을 마치고 한 달의 시간을 드렸다. 그런데 한 달 후 미팅에서 나는 결과물을 보고 많이 실망을 했다. 왜냐하면 나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으나 아무도 나에게 내 지시/요청 사항을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자유양식이라고 했더니 그 결과물의 품질의 차이가 부서별로 천차만별이었다. 직원들을 모두 참여시켜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출한 팀도 있었지만 부장님이 만든 엑셀 양식을 메일로 돌려가며 각자 아이디어를 넣어 그냥 나열한 팀도 있었다. 나의 머릿속에 있었던 상상력과 기대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내용으로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본부는 한 달의 시간을 낭비한 셈이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는 회사에서는 “N”과 ”S”를 절충하여 정확한 타임라인과 예시를 넣은 기본 보고 양식을 제시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현재를 넘어서는 장기적이고 미래 가능성에 기반한 사고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질문을 더해보았다.
”현재 적용된 방법의 한계는 없는지? “
”예산이나 현재 조직 구성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가정을 하고 도입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솔루션은 무엇이 있을까? “
”비슷한 문제를 가진 타산업의 사례는 어떤 것이 있을까? “
이렇게 다양한 질문을 통해 현재에 집중해 있는 팀의 사고와 논의를 미래와 가능성으로 확장시키려 시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강점을 사용하되, 나의 약점을 보완할 상대방의 강점을 적극 수용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 조직의 성과와 결과물의 품질을 올리기 위해서다. 내가 나 자신을 아는 것처럼 상대방의 성향과 기질을 알아 그에 맞게 소통하는 것이 그 결과를 위해 더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N”이지만 조직의 수많은 “S”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배경, 문제점, 도전과제, 언제까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주저 말고 물어볼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무척 애쓰는 중이다.
어디 “N”과 ”S”뿐이랴?
논쟁과 토론을 즐기는 ”T”인 나는 회의 후에 맘이 상했을 ”F” 에게 혹시 맘이 상했는지 묻기도 하고 필요하면 사과를 하기도 한다.
“E”는 회의에서 첫 번째 발언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리더인 내가 먼저 발언을 하면 회의의 흐름이 양방향으로 흐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저는 의견이 있지만, 모두의 의견을 들어보고 말을 할게요”하고 멈추기도 한다.
우리가 직장생활과 조직에서, 또는 가정에서도 겪는 수많은 갈등과 소통의 어려움은 어쩌면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에서 필연적인 것임을 기억하고, “내가 옳지 않을 수 있다. 상대가 옳을 수 있다. “ 혹은 ”둘 다 맞는데, 그저 둘의 관점과 의견이 다르다 “라고 생각해 보면 사실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조직에 16가지 종류의 다양한 사람들이 충분히 있을 때, 그리고 저마다의 다름, 자기다움을 드러낼 수 있을 때 더 건강하고 성장하는 조직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N”인 나는 오늘도 ”S”가 있어서 감사하고 “S”와 일할 때 더 온전한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감사합니다. 우리 조직의 모든 “S” 들에게, 그리고 나와 같이 한 집에 사는 우리 남편 ”S “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