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초는 뿌리째 뽑아야 한다

by 김선태

사람을 미워해 봐야 나만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요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이지 싶다. 미움이라는 감정이 묘한 것은 아무리 다독여도 가슴 저 밑 어디선가 스멀스멀 올라온다는 것. 오늘 퇴근하자마자 옷을 훌러덩 벗어던졌다. 그리곤 가벼운 옷차림으로 운동장을 찾았다. 푸른 운동장을 사정없이 달리고 걸으며 그냥 웃었다. 사람을 미워해 봐야 나만 손해라는 것을 다시 곱씹었다.

이렇게 메모를 하고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슬슬 버겁기 시작한다. 일하지 않는 놈은 변함없이 뺀질거리고 일하는 놈은 변함없이 뺑이치고... 급기야 오늘은 업무 하나를 또 떠안았다. 나는 봉사한다고 했다. 정승처럼 쓰기 위해 개같이 돈 벌기를 바란게 아니다. 물론 돈도 못 번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조직은 일 잘하는 아무개를 여기저기서 찾는다. 그리곤 여러 사람이 꺼려하는 일을 맡긴다. 아무개는 조금씩 맘 속 상처를 곱씹으며 병들어간다. 조직은 무감하게 아쉬운 척만 한다. 이일 저 일을 해치우던 아무개가 분노하기 시작한다. 그가 노함은 억울함에서 시작한다. 조직은 계속 나 몰라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안타까워만 한다. 조직은 그렇게 서서히 몰락한다. 언제나 새로운 피로 근근이 응급처치 수혈만 한다. 서서히 지친 아무개는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날 자르던가 젤 자르든가 외치고 싶지만 이것마저 다시 주워 담는다. 늘 착한 놈이 억울한 세상이다. 조직을 사랑하는 놈이 노상 바보다.


며칠이 지났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고 잠을 청했다. 바로 잠들기가 뭐해서 책상 구석에 내팽개쳐둔 책을 몇 장 읽고 누웠다. 그래서 그랬는지, 낮에 마신 진한 라떼 때문인지 눈이 말똥말똥. 눈을 지그시 눌러주는 두툼한 안대를 하고 간신히 성공한 취침.

운동을 너무 격렬하게 했던 모양이다. 두 다리에 쥐가 나서 간밤에 세 번을 깼다. 급작스레 찾아오는 근육경련이라는 것이 이전과 다르게 저세상을 체험하게 한다. 언젠가 이런 내 사정을 듣던 성근형님이 격하게 공감하며,


- 크크크. 그려. 맞어. 나는 수건을 머리맡에 두고자. 쥐가 나면 바로 일어나서 수건으로 발을 땡겨. 안 그러믄 죽어. 그냥 정신이 번쩍 나지.


했다. 좌우당간 그렇게 세 번째 경련으로 잠에서 깼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새벽에 눈이 떠지면 다시 쉬이 잠들지 못한다. 지금이 그렇다. 말똥말똥 떠진 눈. 멀뚱멀뚱 시체처럼 누워있는 것이 뭐 했다. 문득 요즘 생각을 글로 옮겨보고 싶어 가방에서 접이식 키보드를 꺼내어 다시 침대에 엎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뚜닥뚜닥 두드린다.

나는 나이를 쉰 하고도 네 개를 더 먹어 쉰넷이다. 그런데 이것이 말이 되는가 싶다. 내게 진심으로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다. 인생을 살면서 딱 두 명째. 두 사람의 공통점은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탐탁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일이라는 것을 1도 하지 않는다. 조직에 무임승차하는 사람. 동료의 열정을 땅바닥으로 끓어내리는 사람. 어제는 미영 누나가 쓴 페북글에서 여러 답 중 하나인 해답을 마주했다.


‘독초는 뿌리째 뽑아야 한다.’


하지만 그를 송두리째 뽑아 버릴 수 없다. 나에게는 그럴 힘도 없거니와 설령 뽑았다 하더라도 내 맘이 편치 않음이 불 보듯 뻔한 터. 그래서 철저하게 그를 무시하고 가벼운 눈인사로 관계를 맺어가려 다짐을 했더랬다. 그런데 이것도 쉬운 게 아니더라. 살짝 웃으려 했는데 활짝 웃게 되더라. 순간 입가에 머문 미소가 가식적으로 느껴 저 내가 한심하더라. 도대체 언제쯤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하지 않으며 살게 될까. 그냥 나무는 나무, 풀은 풀, 산은 산, 물은 물, 독초는 독초로 보고 무감하게 살 수 있는 그때는 언제일까 싶다. 자주 마주치지는 않지만 혹여 오늘 마주친다면 정말 살짝만 웃어야겠다. 힘주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목에도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다. 넋두리를 마쳐야 하겠다. 그런데 말이다. 갑자기 드는 생각 하나. 내가 그 사람 맘 속, 독초일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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