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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ETOURE A DAY

우울에 빠지는 과정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by DAWN


자기소개서를 여기저기 쓰다 보면 이 내용을 여기 썼던가, 위에서는 무슨 말을 썼던가 머릿속에 혼란이 온다. 내가 쓴 글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 봤을 땐 눈앞에 글자들이 떠다닌다.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땐 어색한 문장이 있어도 그것을 발견하기 어려운 상태다. 간신히 떠다니는 글자들을 붙잡고 자기소개서를 완성한다.

그러면 긴장이 탁 풀리면서 그대로 쓰러져 눕는다. 타짜에서 평경장이 말한 ‘혼이 담긴 구라’처럼 내 경험이 그럴듯하게, 직무와 어떻게든 연관되어 보이게 썼는지 자기 검열이 필요하지만 그럴 힘은 이제 없다. (그렇다고 거짓말로 자기소개서를 썼다는 건 아니다.) 혼이 담겼는지 확인할 구력이 이젠 남아있지 않다.


며칠 밤낮 자소서 앞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거지꼴이 되어있다. 얼굴은 개기름으로 번들거리고 머리카락은 촉촉하게 기름져있다. 간지러워 미치겠지만 마무리 짓지 않으면 속 편히 딴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며칠 후 서류 발표가 나고 ‘불합격’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혼을 갈아 넣은 자소서였지만 이번에도 탈. 아무리 애써도 안 된다는 무력감에 맥이 탁 풀리는 순간이다. 더 이상 구력도 남아있지 않기에 더 우울해진다. 서류 탈락. 예전에는 서탈에 연연하지 말자는 마인드로 맛있는 거나 시켜먹었는데 이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이러니까 나는 뭐 하고 있는 건가 싶다. 이렇게 자기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다가온다.


이 삼일 정도 폐인처럼 지냈다. 이제 좀 너무하지 않나 싶어 씻으려고 거울을 보는데 거울에 비친 나 조차도 꼴 보기가 싫어졌다. 너무 못나보였다. 못나도 나인데 어쩌겠는가 하며 씻으러 갔다. 씻고 나니 그래도 기분이 한 결 나아진다. 며칠 동안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수면 패턴이 깨졌는데 이젠 정신 차리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안다. 며칠 쉬었던 운동도 다시 시작한다.


운동의 좋은 점은 외적인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면, 잡생각, 허리 통증 때문의 이유가 훨씬 크다. 또한 몸을 혹사시켜 잠을 잘 오게 한다. 체력이 길러진다는 점도 있다. 또 운동하면 땀과 냄새가 나기 때문에 씻게 되어 있다. 사람 몰골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여하튼 자기 우울에 빠진 내가 다시 일어서는 방법은 별거 없다. 해야지 뭐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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